저주의 狂氣

저주의 광기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박 대표의 자작극이다”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 ‘박근혜’ 피습 직후에 보인 일부 네티즌의 반응이다. 정반대의 반응도 있다. “여당의 기획이다” “빨갱이를 때려잡을 절호의 기회다” 양쪽 다 광기다. 인터넷이 광기로 도배됐다.

부모를 흉탄에 여읜 그녀 자신마저 칼 부림 당해 목숨을 잃을 뻔 한 중상의 기구한 운명을 개탄하는가 하면 반대의 글이 있다. “박근혜씨를 표적으로 삼은 것에는 사회적 의미가 있게 마련”이란 글이 실린 ‘노사모’ 홈페이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부적응자나 어떤 사적 불만을 아무데나 표출하고 싶은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박정희를 증오하는 어떤 사람들이 저지른 일일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라고 주장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인 어느 시인은 인터넷 문학사이트 ‘문학의 즐거움’에서 (박 대표 부모의 죽음과 이번 피습 사건을 연관시켜) “인과응보다. 이 정도의 테러를 다행으로 여겨야 될 것이다”라고 한데 이어 비속어와 성적 표현으로 일관하는 풍자시를 썼다.

‘저주받은 아비 뒤를 기를 쓰고 따르는 갸륵한 유신 효녀야, 아비를 개처럼 쏘아죽인 미국에 치마폭을 들어 보이는 더러운 창녀야…’ 지난 3월15일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에 실린 ‘박근혜’ 비방 시다. 이 사이트는 북의 ‘조평통’에서 운영한다. 지난 2002년 5월 박 대표가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뒤 ‘여사’라고 했던 호칭이 이처럼 바뀐 것은 올 신년 공동 사설에서 ‘반보수 연합전선 구축’을 강조하면서 부터다. 조선중앙방송은 1월4일 “유신 독재자의 후예인 한나라당 대표는 아비의 비극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독재를 하고 개발독재를 하고 유신독재를 한 것은 틀림이 없다. 1961년 5월16일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 1979년 10월26일 타계할 때까지 18년을 장기 집권했다. 그같은 장기 집권에도 죽으면서 가족에게 남긴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국 근대화’ ‘경제부흥’의 성과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여기서 말할 계제가 아니다. 어떻든 박 대통령 치하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한 고초를 겪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건 사실이다.

박 대표가 오늘의 정치인이 되기까진 자신의 노력도 많았지만 박 대통령 후광의 영향이 크다. 정치인 ‘박근혜’는 이래서 아버지의 영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치인으로서는 부녀가 평생 연좌제를 면치 못하는 입장에서 아버지 때문에 득을 보는 것도, 아버지 때문에 욕을 먹는 것도 딸의 숙명이다.

문젠 욕도 욕 나름이다. 북쪽 사람들이 막말 욕을 하는 것이야 그런다손 쳐도 남쪽 사람들의 막말 욕은 그래선 안 된다. 박 대표 부녀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뭐라고 해도 좋지만, 딸이 칼부림 당해도 싸다는 식의 막말은 민주주의의 반역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박정희’가 총들고 정권 빼앗은 것을 욕할 수 없다. 테러리즘이긴 같은 류이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북엔 화해를 해야한다는 사람들이 왜 같은 남쪽 사람들끼린 화해를 거부하느냐는 것이다. ‘박정희’가 아무리 독재를 하고 사람을 많이 다치게 했어도 6·25 전쟁의 동족상잔 참상과는 비교가 안 된다. 비교가 안 되는 그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용서를 하자는 사람들이 ‘박정희’는 끝까지 매도하는 연유가 뭣인지 궁금하다.

박 대표가 비록 아버지 후광을 입긴 했어도 권력의 자리를 물려 받은 건 아니다. 아버지 자릴 세습받은 김 위원장과는 다르다. 김 위원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박 대표를 부정하는 것은 그 근거가 뭣인지 의문이다.

북쪽 사람들과 등지고 살자는 게 아니다. 요점은 저들은 용서하면서 이쪽은 저주하는 것이 민족화해라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말 두렵다. 5·31 지방선거가 끝나면 저주의 광기가 더할 공산이 높다. 분단보다 더 심각한 것이 분열이다. 그런데 우린 분단국가에 겹쳐 분열사회로 치닫는 광기의 지배속에서 살고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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