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대전시향 2006 서울연주회

또 한 명의 협연자가 있었고, 공연의 호스트는 대전시향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날 무대의 주인공이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전시향과 비스펠베이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그들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당시와 비교할 때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다시 만난 이들의 면모는 각각 여러모로 성장해 있었다. 요약해 말하자면, 협연자 쪽은 더욱 깊어졌으며 관현악단 쪽은 한층 정교하게 단련되어 성장의 가능성을 엿보여 주었다.

풍부한 낭만과 서정성, 그리고 환상적인 느낌이 다분한 엘가 협주곡은 비스펠베이의 활로 꼭 들어보고 싶은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뒤 프레의 음반으로 국내에서는 유달리 인기가 높은 곡이기도 하다. 보통은 기교를 앞세우다가 노래를 상실하거나 혹은 정반대의 상황으로 절반의 성공에 그치는 이 곡을 비스펠베이는 양 쪽 모두를 부각시키며 완벽히 연주해냈다.

2악장과 4악장에서는 날렵한 기교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며 1악장과 3악장에서는 멜로디 라인을 한껏 살려 낭만성을 최대한 고양시켰다. 다소 들떠 있는 듯 떠돌았던 오케스트라 협연은 비스펠베이의 풍부하면서도 묵직한 과다니니 소리에 빨려 들어가며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인터미션 전에 앙코르로 들려준 비스펠베이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3번 사라방드와 6번 가보트)은 그가 1996년 한국에 데뷔를 하고 난 뒤 얼마나 깊이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엿보게 해준, 기대치 못한 행운이었다. 1996년 당시 그는 원전악기를 대동하고 찾아와 이 작품을 연주했으며 2000년에는 아예 바흐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를 가지며 팬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비스펠베이의 연주가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치는, 춤곡의 발랄함을 있는 그대로 살린 젊고 원기 왕성한 바흐였다면, 이날 과다니니로 연주한 바흐는 불혹을 넘어선 중견 연주가의 한층 깊어진 내면이 투과되어 성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실려왔다.

실상 대전시향이 제시한 이날 프로그램은 국내 교향악단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곡목으로 구성되었다. 바그너의 '베젠동크의 노래'를 듣고자 찾아온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들의 모습도 객석에서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소프라노 데보라 마이어는 바그너를 노래하기 좋은 굵직하면서도 울림이 큰 목소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너무 성급한 진행과 오케스트라와의 부조화, 성악가 자신의 부적절한 호흡으로 인하여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감정에 몰입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2부에 연주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대전시향이 가진 가능성, 특히나 국내 교향악단의 대표적인 취약점으로 꼽히는 금관악기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연주 자체는 대단히 역동적이고 파워가 느껴졌지만 강약과 템포 조절에는 한계를 드러내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드라마틱한 긴장감과 다이내믹이 아쉬웠다.

오히려 앙코르로 연주한 '경기병 서곡'이야 말로 단순히 '앙코르'로 치부할 수 없는 멋지고 경쾌한 완성도를 이루어내 대전시향의 낙천적인 미덕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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