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과는 또 다른 영화가 될 겁니다"

태양이 기운을 잃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이지만 은근히 찌는 더위에 미자 식구들이 모여앉은 주택 안은 분장이 흘러내릴 만큼 덥다.

개 짖는 소리가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주택. 제법 너른 마당에는 세월을 품은 초목이 남부럽지 않게 우거져 있다. 그 마당을 마주보고 있는 단층 양옥 거실에는 음식이 한 상 잘 차려져 있고, 미자의 세 할머니(김영옥ㆍ서승현ㆍ김혜옥)와 아버지(임현식), 노총각 삼촌(우현)이 대단히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그 맞은편에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표정의 지 PD(지현우)와 그보다 할 술 더 떠 눈곱도 안 뗀 산발한 모습의 미자(예지원)가 앉아 있다. 사연인즉, 미자와 지 PD는 전날 밤 술에 만취해 미자의 집에 왔고, 지 PD의 출현에 미자 가족은 드디어 미자가 짝을 찾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

'버라이어티 코믹 소동극'을 표방한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감독 김석윤, 제작 청년필름ㆍ싸이더스FNH)의 25일 촬영현장. 동명의 KBS TV 인기 시트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이 영화는 시트콤의 출연진과 감독이 그대로 다시 뭉쳤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둘째 할머니 역의 한영숙이 촬영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서승현으로 교체됐을 뿐, 전반적인 분위기는 시트콤 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여전히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해 따뜻한 웃음을 기대하게 한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8월 초에 촬영을 마무리하고 올 겨울에 개봉할 예정이다.

다음은 감독ㆍ출연진과의 일문일답.

--자기 소개와 영화에 임하는 소감을 말해달라.

▲방송을 영화로 옮기면서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 느꼈고 특히 시나리오 작업이 꽤 어려웠다. 그러나 일단 시나리오가 나오고 난 후에는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워낙 연기자들과는 1년여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특별하게 연기나 상황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김석윤 감독, 이하 김)

▲이렇게 골치 아픈 가족을 진두지휘하는 큰할머니 역이다. 골치 아픈 할망구 셋에 홀아비 아들, 노총각 아들, 노처녀 손녀를 이리저리 다스리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가 잘못되면 감독 탓이고 잘되면 우리 배우들 덕분인 줄 알아달라(웃음). 얌체 할머니다. (김영옥, 이하 영)

▲치매기도 약간 있고 공주병도 있고, 주제 파악도 못하는 막내 할머니 역이다. (김혜옥, 이하 혜)

▲뭐가 그리 급한지 하늘로 먼저 간 한영숙 씨 대신해서 촬영하게 된 둘째 할머니 역이다. 이 영화가 잘돼야 하늘에 먼저 간 한영숙 씨 영혼이 기뻐할 것 같다. 김 감독과는 시트콤 '달려라 울 엄마'에서 1년간 같이 호흡을 맞췄지만, 영화를 30년 만에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좋다. 세상을 뜰 때까지 마음 속 깊이 사랑을 갖고 싶어하는 할머니다. (서승현)

▲한영숙 씨가 우리 근처에서 촬영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밝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인간은 우리 사회에서 '푼수'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만이 모인 것이 우리 가족이다. 처음에는 시트콤을 6개월만 하기로 했는데 1년이나 하게 됐고 그것을 또 영화로 만들게 되니 정말 기분 좋다. 새로운 맛이 나고, TV 때보다 돈도 좀 더 받고 아주 좋다. (임현식)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성격은 대단히 소심하고, 정은 굉장히 많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시민적인 삼촌 역이다. (우현)

▲지 PD 역을 다시 하게 돼서 마치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시트콤 촬영할 때처럼 모두 무척 편하게 대해주시고 호흡도 잘 맞아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 보고 났을 때 '러브 액츄얼리' 같은 흐뭇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지현우)

▲촬영 한번에 멍 하나, 상처 하나가 생긴다. 그만큼 미자가 잘 넘어지고 많이 다쳐서 그렇다. 이번 영화 하면서 좋았던 것은 미자의 속내가 많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방송보다 좀더 섬세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많다. 비행기 타고, 번개 맞고 쓰러지거나, 포장마차에서 결혼하는 등의 경험이 등장하는데 모두 미자의 판타지다. 미자와 나이가 비슷하고 같은 연기자다 보니 극중 3년간 백수로 풀 죽어 있는 장면이나 갑자기 단역 역할이 왔을 때 서둘러 나가는 장면 등에서 눈물이 나더라. 공감이 많이 가서 좋았다. 시트콤이 잘돼 영화로 만들어지니 영광이다. (예지원)

--1년간 방송한 시트콤을 영화 한 편으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방송에서는 할머니 셋, 노처녀 셋, 여자의 시각에서 보여진 남자, 혈연 아닌 가족관계, 부녀 관계 등 '관계'가 많았다. 그것을 120분짜리 영화에 담으려다보니 불가불 삭제돼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 가장 쉽게 소구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딘가를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주눅이 든 계층이라 할 수 있는, 30대 초반으로 이유 없이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 움츠러드는 노처녀 미자에서부터 어느새 인생의 배경 화면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적으로 무시된 노인 세 명, 그리고 일종의 '불량주부' 같은 40대 중반의 백수 삼촌 등 사회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 세 계층에 포인트를 맞췄다. 그러다보니 나머지 비중이 줄어든 연기자들한테 굉장히 미안해졌다. 분량이나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았고, 영화로서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김)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어땠나.

▲영화로 한다고 하니까 다른 기대가 되더라. TV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성격이 다른 게 아니라 얘기가 전혀 다른 게 있다. 또 휙휙 지나가는 TV와 달리 한번 영화로 만들면 자꾸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더 섬세하게 잘해야 해 긴장됐다. 시트콤의 팬클럽도 생겼는데,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너무 재미있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께 영화를 선사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없는 행운을 갖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몹시 흥분되고 기다렸다. 할머니들은 모든 것이 소외되기 쉬운 계층인데 우리를 보며 저 인생이 그렇게 소외당하고 슬픈 인생만은 아니구나 느꼈으면 좋겠다. 관객은 우리가 나이를 잊고 사는 모습을 보지 않을까 싶다. 시나리오가 대단히 좋아서 영화가 거기에 못 미칠까 걱정하고 있다. (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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