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0일 개봉하는 영화 '각설탕'(감독 이환경, 제작 싸이더스FNH)은 임수정(26)이라는 배우가 없었더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다.
우선 연기력을 갖춘 젊은 여배우여야 했고, 작고 날렵한 기수 역에 어울리는 체구여야 했다. 더불어 말과 한몸이 될 수 있는 담력과 운동신경도 필수. 임수정 외에 떠오르는 배우가 없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임수정 역시 이 영화에 대해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니, 배우와 영화의 궁합이 이처럼 잘 맞기도 힘들 것 같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수정은 "시나리오를 받고 한 달 반 정도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면서 "실패하더라도 하자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강력한 '러브 콜'을 받은 작품이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내가 작품의 성패에 대해 우려하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쪽이었다"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일종의 책임감이 들었죠.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많이 봐왔던 장르지만 국내에서는 최초잖아요. 또 어찌보면 스포츠영화, 동물영화의 전형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바로 그 점이 상업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첫 단추를 꿴 사람들은 그만큼의 보람을 얻고 긍정적인 평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금껏 임수정이라는 배우에 대해 너무 몰랐다. 짐짓 "너 아니면 안된다"는 반복적인 설득(혹은 꾐)에 넘어가 출연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보기와 달리 도전정신이 강했다. 말이 쉽지, 경주마를 타는 기수 역을 맡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겠는가.
"시나리오상에 표현된 경주 장면들이 실제로 어떻게 화면에 옮겨질까 무척 궁금했어요. 경주를 하면서 기수들끼리 대화도 나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죠.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경험해보고 싶었고 고생할 일이 훤히 보였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분명히 제게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각오는 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물론 경주 장면은 대역을 썼지만 그 외 말 타는 장면은 그가 직접 연기를 펼쳤다. 그중에서도 엉덩이를 들고 상체를 앞으로 바짝 기울인 상태에서 말을 모는 일명 '몽키타법'은 실제 기수들도 2년여의 훈련을 거쳐야 제대로 된 자세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핵심 전문기술. 그는 3개월의 훈련을 거쳐 이 자세를 소화해냈다.
"팔, 허벅지 앞근육, 종아리 뒷근육 등 특정부위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동작이에요. 많이 힘들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해냈는지 모르겠어요. 악으로, 깡으로 버텼죠. 그런데 다른 기수들이 제가 말 타는 모습을 보고 '요즘 투잡족이 유행인데 평일에는 연기하고 주말에는 경주하러 오라'고 농담을 하더라고요."
기수 역도 큰 도전이지만 이 영화가 그에게 남다른 또 다른 이유는 첫 단독 주연 영화라는 점이다. '장화, 홍련'으로 이름을 얻은 후, '…ing'의 여주인공을 꿰찬 그는 '새드무비'를 거쳐 네 번째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았다. 물론 '혜성같이 나타난 스타'도 있지만, 이만하면 급성장이다.
"혼자서 한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배우로서 필요한 자세, 마음가짐, 다른 배우ㆍ스태프와 소통하는 방식 등 많은 것을 배웠어요. 때로는 리더십도 필요했고 힘들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성숙한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는 말을 상대로 연기하다보니 순간순간 돌발상황에 맞춰야 하는 순발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덕분에 연기 훈련도 많이 하게 됐죠."
현재 충무로에서 소비되는 임수정의 이미지는 소녀와 여인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다. '각설탕'이 요구했던 캐릭터 역시 더도 덜도 아닌 그것.
"그 이미지가 근시일 내에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 변주는 하고 있습니다. '각설탕'에서는 소녀에서 나아가 소년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했지요. 제 안의 남성스러움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차기작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또다른 느낌을 받을 겁니다."
말의 출산을 지켜보고 새끼 말에게 우유를 먹이는 등 1년여 동안 말과 하나가 됐던 임수정. 이제 영화는 그의 손을 떠나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임수정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방점을 확실하게 찍었다. 자칫 무모할 수도 있었던 도전에 주저없이 응해, 보란 듯이 배우로서의 역량을 확대해보인 그의 노력과 성과는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