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선 공권력 불신, ‘일본침몰’에선 국가 신뢰?

“여러분은 지금 정말 위험한 도시에 오신 겁니다. 볼일이 끝나는대로 빨리 서울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난 4일 저녁 일본 도쿄 유락초에 위치한 도호(TOHO) 시사실에서 열린 영화 ‘일본침몰’ 시사회 직후 히구치 신지 감독이 한국 기자단에게 건넨 농담이다. 안그래도 총 20억엔(약 200억원)의 제작비 절반을 컴퓨터 그래픽에 투입해 도쿄 타워,롯폰기 힐스가 무너지고 후지산이 붉게 타오르는 장면 등을 그려낸 이 영화를 도교 중심가에 앉아 지켜본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오는 30일 한국에서도 개봉되는 이 영화는 현재 일본에서 흥행 순항중이다. 지난달 15일 개봉 후 첫주에 9억엔을 벌었고 개봉 16일째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1973년 발간돼 400만부가 팔린 원작 소설이나 같은 해 만들어져 650만 관객에 40억엔의 흥행 수입을 기록한 동명 영화의 파괴력에는 다소 못미치는 수준. 당시에는 일본 침몰설에 대한 공포로 주가가 폭락하고 이민자가 속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침몰’은 여전히 일본인에게 자극적인 영화다. 일본의 지각 아래 있는 태평양 플레이트가 맨틀의 경계면에 끼어들면서 열도 전체가 급속히 가라앉게 된다는 내용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설정. 진도 5 이상의 지진만 지난 79년간 292회나 일어난 현실도 침몰설을 떠받친다. 그런 만큼 일본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위기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의미도 가지는 셈이다. 여기에 20년 전보다 몇 배 생생해진 재난 장면은 “일본에도 이런 블록버스터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강변하는듯 하다.

다만 영화가 일본 밖에서도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봐온 재난영화를 일본으로 옮겨온 것이 강점”이라던 감독이 “생각해보니 해외 관객에게는 별 매력이 아닐 수 있겠다”고 말한 데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미 ‘딥 임팩트’ ‘아마겟돈’ 등을 본 관객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

일본의 인기 그룹 스마프(SMAP)의 멤버 구사나기 츠요시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메종 드 히미코’ 등으로 주목받는 여배우 시바사키 코가 보여주는 호연과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다’는 박애정신을 강조한 따뜻한 흐름 만큼은 평가할만 하다.

한 가지 공개하면,영화 속 일본 전체가 불타는 장면에서 한반도는 멀쩡하다. “대학 교수들에게 물어보니 한반도의 위치는 안전다하더라”는 것이 감독의 부러움어린 설명이었다. 반면 온 나라가 아비규환이 된 상황에서도 군인,소방대원 등은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에서는 재난 대처 시스템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가 읽혔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영화 ‘괴물’을 통해 폭발적 공감을 얻고 있는 한국과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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