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은 공포의 결정판이라고 할만하다. 한여름 밤 괴물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고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삼복더위를 이겨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끔찍한 괴물의 출몰무쌍하는 영화는 공포를 느끼고 즐기고 싶어 하는 심리적 반응을 최대로 이용한 영화 산업의 한 핵심이 된지 오래다.
공포(恐怖)의 사전적 의미는 ‘무서움’ 또는 ‘장차 고통이나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즉 구체적인 공포는 결정적으로 자신의 신체적 위험에 직면해 생존이나 미래, 또는 자신에 대한 안위를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상상의 극단적 결과물인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묵과할 수 없는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공포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괴물’이 그것이다.
영화 ‘괴물’에서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에 출몰하는 거대한 괴물은 주한미군이 무단 방류한 독극물의 영향으로 탄생된다. 한강에 방류한 독극물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괴물의 형상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는 지난 2000년 발생한, 이른바 ‘맥플란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용산 미군기지에서 포름알데히드란 독극물을 하수구에 방류한 것을 한국측 군무관의 양심선언으로 전쟁과 평화의 양면적 가면을 쓴 미국을 재진단하게 한 사건이다. 그래서 영화는 괴물이라는 상상의 생명체를 소재로 하지만 서막에 ‘맥플란드’ 사건을 인용, 한반도 현실을 상기시키고 숨겨진 미국의 정치적 의도에 미묘하게 접근하게도 한다. 부연하자면 미국이 정면에선 세계 평화를 내세우는 동안, 주한미군이 방류한 독극물로 오염된 한강 속에선 문제의 거대한 힘을 가진 정체불명의 괴물이 태동된 것이다.
이로 인해 ‘괴물’은 반미영화란 지탄을 혹자들로부터 받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존에 개인이나 가족의 불가항력적인 죽음에 순응하고 전통적인 애환을 다룬 우리의 정서적인 영화의 구도를 벗어나 눈앞에 나타난 괴물이란 재앙을 가족애로 물리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성과이다. 나아가 괴물로부터 존립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상황에서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선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종의 적신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궁극적으로 한미관계에서 스크린쿼터제가 축소·폐지되면 좋은 한국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도 사라진다. 현재 추진중인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면 사회 양극화가 더 심해져 농민의 80%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는 게 공론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란 존재는 여전히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에 살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기에 맞서야 하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편, 전쟁과 평화라는 전략적 양면성과 유연성을 가진 미국은 그동안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알게 모르게 방해, 또는 지연시켜 왔음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관망한다면 미국이란 괴물은 어쩌면 우리가 물리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영화 ‘괴물’이 상상력의 소산이면서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의 재앙을 예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사실이 끝나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의 발화지점은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권 성 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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