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희 "저도 설경구처럼 될지 알아요?"

"저도 언젠가 설경구 선배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배우 이천희(27)의 장점은 긍정적인 성격이다. 타고난 자질보다는 노력을 믿고, 편법보다는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하는 배우다.

영화 '뚝방전설'(감독 조범구, 제작 싸이더스FNH) 개봉을 앞두고 최근 종로구 인사동 프레이저 스위츠 호텔에서 이천희를 만났다.

'뚝방전설'은 서울 변두리 하천 둑을 무대로 젊은 혈기의 세 남자 정권(박건형)ㆍ성현(이천희)ㆍ경로(MC몽)가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이천희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싸움한다"는 평범한 학생 성현을 연기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모델 출신'이라는 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시간이었다.

"연기 데뷔 5년차인데 아직도 제 이름 앞에 '모델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한마디로 연기 못한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저도 언젠가는 설경구 선배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천희는 모델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들을 때마다 "섭섭하다"고 했다. 연기력은 배우의 역량이지, 모델 출신이냐 아니냐가 좌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여전히 모델 일에 매력을 느끼지만 내 미래는 배우지 모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 이천희는 여타의 모델 출신 배우들과는 걸어온 길이 다르다. 그는 모델학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이천희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2002년 초, 극단 '동랑앙상블'에 수습단원으로 들어갔다가 경제적인 사정으로 모델 일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또한 같은 해 영화 '빙우'에 출연하면서 연기생활도 시작했다.

"동랑앙상블에 있을 때 선배들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대사는 있었느냐' '몇 신(scene)이나 나왔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첫 영화인 '빙우'에서 주인공 우성(송승헌)의 친구 병훈 역으로 출연하는 행운이 찾아왔어요. 첫 출연인데 열다섯 신이나 나왔어요."

'열다섯 신'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는 당시가 생생히 기억나는지 흥분한 어조였다. 연극을 하면서 영화 출연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현실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는 영화 첫 촬영 날에 떨려서 잠 못 자고 촬영장에 두 시간이나 늦게 간 얘기, "소개해 줄래"라는 짧은 대사조차 발음을 제대로 못했던 얘기 등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배역이면 누가 말려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 '뚝방전설'도 출연 제의가 들어오자마자 다음 날 감독을 만났다고.

"시나리오를 읽고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매니저에게 졸라서 그 다음날 조범구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배우를 이해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연극을 한 편 할까 합니다. 그래서 초반에 영화 준비작업에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무조건 (연극)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학로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헤어진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출연한 것이 올 초 공연했던 연극 '해일'이다.

"연극이 끝나고 마지막 무대 인사할 때 제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상대역이었던 오달수 선배님이 '너는 연기를 그 따위로 해놓고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런 표정을 짓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웃음)."

이천희가 맡은 성현은 정권, 경로 등과 함께 '노타치파'를 결성해 한때 동네 '뚝방(둑)'까지 '접수'했던 인물. "싸움꾼인 정권과는 달리, 평범하고 무난한 남자인 성현에게 끌렸다"는 이천희는 "'뚝방전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면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요즘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연락 좀 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말도 잊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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