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준기를 보고 열망할 때 돌아서서 안성기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합니다.”
‘왕의 남자’로 올해 초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영화감독 이준익(47). 그가 1년도 채 안돼 ‘라디오 스타’(제작 영화사 아침·28일 개봉)로 돌아왔다. 1980년대 인기 정상이었던 한물 간 록스타 최곤(박중훈)와 20년간 그 뒤치닥거리를 해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를 그린 영화다. 검증된 두 배우를 내세운 이 영화는 위험스런 매력의 이준기로 무장했던 전작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안전한 느낌인 것도 사실.
그러나 예단은 금물이다. 최근 공개된 ‘라디오 스타’는 두 배우를 최근 어떤 영화에서보다 반짝이게 하는,그래서 그들에게 새롭게 빛날 기회를 주지 못한 한국 영화계를 원망하게 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서울 충무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감독은 홍보 일정에 시달리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빚이 많아서 영화 찍는 내내 빚 독촉 전화에 시달렸는데 지난 번 흥행으로 다 갚는 바람에 이번에는 일체 전화가 안오잖아요.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래서 영화의 디테일이 살았어요. 예전에 흥행 압박 속에 있을 때는 큰 것만 보였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편하니까 작은 것,일상 속의 소소한 것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이리 빨리 차기작을 내놓게 된 것도 그 빚과 관련이 있다. “‘왕의 남자’로 빚을 다 갚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촬영 도중 채권자들에게 다음 일거리를 확인시켜주려 ‘라디오 스타’ 계약을 해버렸다”는 것. 이준익 감독은 “이번 영화는 완성된 시나리오에 캐스팅도 거의 다 된 상황에서 합류해 현장에서 구현해준 것 뿐”이라고 말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면 역시 그만의 냄새가 난다. ‘황산벌’에서의 거시기(이문식),‘왕의 남자’에서의 장생(감우성)처럼 ‘라디오 스타’의 최곤과 박민수도 마이너리티인 것. 이 감독은 “사람의 세계관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비슷한 얘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번 작업의 가장 큰 의미로 그는 안성기,박중훈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과 일한 점을 꼽는다. 특히 안성기에 대해서는 “미국에 로버트 드니로,영국에 로렌스 올리비에,일본에 다카쿠라 켄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안성기가 있는데 그만한 존경을 보내주는 이가 너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어리광 피우는 최곤,사고를 수습해주는 박민수라는 영화 속 두 인물 중 이 감독은 어느 편인지를 물었다. 그는 “누구나 두 측면을 다 가졌을 것이고 나도 그렇다”면서 “영화에 ‘별은 혼자 빛나는 게 아니라 다른 별의 빛을 받아 빛난다’는 대사처럼 나도 다른 이들의 무수한 빛을 받으며 살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마음의 빚은 아직 남은 셈”이라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마음의 빚은 진 세월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다 갚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올해 초 인터뷰에서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가는 것이 예술이고 나는 ‘왕의 남자’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곤 했던 이준익 감독. “가장 멀리 오려고 했지만 어찌보면 또 제자리인 것 같기도 하다”는 그는 “이제 또 가장 먼 곳으로 가야지”라고 덧붙인다. 그는 현재 정진영과 ‘매혹’이라는 제목의 멜로 영화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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