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리랑’!

응어리진 한(恨)의 딱딱한 고체를 흥(興)이 영롱한 오색빛 부드러운 기체로 승화시킨다. 생활의 혜지다. 우린 선세(先世) 적부터 이렇게 살았다. ‘아리랑’은 그같은 정서가 시대와 공간을 통틀어 함축된 겨레의 가락이다.

‘아리랑고개’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지방에 더러 있는 아리랑고개는 자작이지 원래의 기원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리랑고개’는 많다. 우리의 가슴마다에 자리잡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면 웬지 서럽다. 서럽다가도 신바람이 난다. ‘아리랑고개’는 한과 흥의 고비를 이루는 마음의 고개인 것이다. 무형의 정서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아리랑고개’다.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변이여음이 ‘아라리’며 ‘스리랑’ 등이다.

아리랑의 유래는 모른다. 국문학계가 추정하는 아랑설과 아이롱설은 조선시대가 배경이다.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의 전설이 곧 아랑설이다. 또 대원군 때 경복궁 공사를 벌이는 민초들이 원납전 강요를 듣기도 싫다며 불렀다는 것이 아이롱설(我耳聾說)이다. 알영설도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을 찬미한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아리랑’의 유래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조까지 광범위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신라의 처용무같은 향가(鄕歌)나 백제의 정읍사 같은 창사(唱詞) 그 어디에도 ‘아리랑’이란 구절은 한 마디도 안 보인다. 고려도 그렇고 조선의 가사(歌辭)나 별곡(別曲)에도 역시 단 한 마디가 없다.

그러나 ‘아리랑’ 가락은 꾸준히 번창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신민요아리랑의 효시인 ‘경기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있다. ‘아리랑 맘보’ 같은 가요 아리랑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에서 부른 ‘독립군아리랑’이 있다. 중국 ‘연변아리랑’이나 카자흐스탄 2·3세들이 즐긴다는 ‘고려아리랑’같은 해외동포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또 있다.

‘아리랑’의 국문학적 구분은 문외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리랑은 민초들의 노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리랑’처럼 가락이 다양하고 가사가 다량인 노래는 참 드물다. 본조 아리랑 외에 별조 아리랑이 있고 사설(辭說) 또한 부지기수다. 그러나 음률의 기본이 있다. 장단의 기조가 세마치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세마치는 대장간의 소리다. 쇠를 불에 달궈 불릴 때에 세 사람이 큰 망치로 돌려가며 치는 장단이 세마치 장단이다. 대표적 전래의 민속 장단인 것이다. 보통 빠른 3박자로 나간다. 어쩌면 ‘아리랑’의 원류는 대장간에서 시작했을 지 모른다.

대장간은 수공업시대에 농기구를 만드는 본산이었다. 농경사회에서 더 할수 없는 귀중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장간의 장인(匠人)인 대장쟁이는 더 할수 없는 천민이었다. ‘아리랑’의 기본이 세마치 장단인 것은 결국 상놈사회의 가락이었을 공산이 높다. 양반사회의 시가(詩歌)가 상놈사회의 가락을 기록에 담지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가운데도 ‘아리랑’가락은 밑바닥 생활속에서 줄기차게 이어졌다. 비록 줄기차게 이어지긴 했지만 상놈사회는 글을 모른다. 이래서 구전(口傳)민요로 전해진 게 ‘아리랑’이다. 구전은 시대에 따라 첨가되기도 하고 개작되기도 했을 것이다.

‘아리랑’이 겨레의 가락으로 널리 발달된 것은 난세였던 조선조말에서 일제치하 때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란 말이 인사가 됐을만큼 밤 사이의 변고가 심하고, “진지 잡수셨습니까”가 인사말이 될 정도로 먹거리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당시 발달한 ‘아리랑’ 가락이나 사설은 이처럼 어려웠던 민생 가운데서 희망을 반추했던 것이다.

6·25 한국전쟁을 마지막으로 그같은 세월은 다 갔는가 싶더니 세월이 또 하수상하다. 시대가 다른 세월이다 보니 이 시대 민초의 상놈사회 걱정 또한 선대(先代) 때완 물론 다르다. 그러나 같은 것은 벼슬사는 높은 사람들은 민초사회의 근심 걱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오기로 막가는 노무현 대통령은 민초의 해일같은 원성을 사고 있는 장본인이다. 도대체 그가 누군지 궁금하다. 요즘 같아서는 하루 하루가 불안하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됐는가 싶어 분한 마음도 솟구친다.

‘아리랑’을 불러본다. 무슨 아리랑이든 상관이 없다. 가사를 다 모르면 흥얼거리면 된다. 속상한 맘을 삭인다. 한(恨)을 가슴에 묻어두고 흥(興)을 돋운다. 위기를 타개하는 ‘아리랑고개’의 고비가 언제쯤 어디인 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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