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 “유명배우들 동성애 시나리오에 경악”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전회 매진’을 기록하고, 16일 개봉을 앞둔 현재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고 있는 퀴어(동성애를 다룬) 멜로 ‘후회하지 않아’. 제작사 청년필름의 서울 충무로 사무실에서 이송희일 감독을 만났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수민 역에는 이영훈 낙점”

먼저 부잣집 아들 재민 역에 이한, 호스트바 ‘선수(종업원)’ 수민 역에 이영훈이 캐스팅된 과정을 물었다.

먼저 이영훈.

“이영훈은 그가 열아홉살 때 처음 만났다. ‘굿 로맨스’ 주인공 캐스팅을 위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영훈 군을 발견했다. 느낌이 좋아 영화를 찍었고 이후 영훈이가 군대에 다녀온 후 다시 만나 이번 영화를 함께 하게 됐다.”

이영훈과의 첫 조우를 소개한 감독은 ‘후회하지 않아’에 캐스팅한 이유를 덧붙였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는 상업영화 준비 중에 생긴 시간적 공백을 이용해 만든 저예산 영화다. 내가 인디 감독 출신이고, 뿌리가 인디여서 쉬면 뭐하나 싶은 생각에 ‘건너가는’ 영화로 만든 거다. 어떤 면에선 나의 첫번째 영화 ‘언제나 일요일 같이’의 확대판이기도 한데, 장편영화를 기획하면서 이영훈이 제일 먼저 생각났고, 수민 역으로 그를 심중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흥행을 고려해 이영훈의 캐스팅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믿고 한 번 가보자’고 설득해 함께 하게 됐다.”

“유명 배우들 시나리오에 경악…이한은 흔쾌히”

다음은 이한.

“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잘 알려진 배우들에게도 시나리오를 보냈다. 실명을 대기는 뭣하고, 대부분 놀라고 경악하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한은 TV드라마에서 본 친구인데 흔쾌히 하겠다고 해 의외였다. ‘반갑구나, 같이 해보자’ 싶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지난달 23일 열렸던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배우 황정민도 퀴어영화 ‘로드 무비’에 출연한 이후 떴다. 퀴어 멜로하면 너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배우들을 설득했다”고 밝혀 시사회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캐스팅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이송 감독은 “두 배우 모두 너무 열심히 했고 좋은 연기를 보여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며 고마움과 만족감을 표했다.

이성애자 두 배우, 동성애 연기 어떻게 했을까

지난달 시사회에서 제작자인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는 자신과 이송희일 감독은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 배우인 이한과 이영훈은 이성애자라고 못박았다.

영화에서 보면 두 배우의 감정 연기가 절절하다. 동성애 감정에 몰입한 것일까, 상대를 이성이라고 전제한 연기였을까. 쉽지 않았을 이성애자 배우의 동성애자 연기, 감독은 어떤 ‘처방전’을 내렸는지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는 나의 일곱번째 작품이다. 기존에는 배우들에게 어떤 영화, 어떤 캐릭터라고 시시콜콜 설명하기도 했고, 너무 몰라서 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싶으면 게이바에 데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 말 하지 않았다. 그저 ‘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시나리오에 써있는 대로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촬영 초반에는 ‘감정 잡기가 정 힘들면 네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동성애자 멜로인데 여자친구로 여기고 연기하면 그건 ‘가짜’라는 판단이 섰다. ‘상대역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두 배우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애썼다. 신인이어서 감정이나 시선 처리에 미숙한 부분이 있어 현장에서 혼도 많이 냈는데, 열심히 따라줘 고마운 마음이다.”

“예쁘게 찍지마!”

영화 속 두 남자의 섹스신은 소위 ‘뽀샤시’한 영상으로 비쳐지거나 아름답게 포장돼 있지 않다. 영화에는 두 남자의 사랑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거칠게 담겨 있다. 사실적인 정사신, 어떤 의도였을까.

“절대 예쁘게 찍지 말자는 게 원칙이었다. 스태프들에게 ‘예쁘게 찍지마! 예쁘게 찍지마!’라고 주문했다. 있는 그대로 ‘날 것’의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각도도 잡지 않고 찍었다. 방도 좁았고 해가 뜨고 있어 커튼 치고 후다닥 찍었다.(웃음)”

“심의 통과에는 ‘바다이야기’가 한몫”

이송 감독은 영상물 등급 심의를 고려해, 노출 수위와 선정성이 ‘조절’된 사연도 들려줬다.

“시나리오 초반 작업 당시에는 좀 ‘센’ 장면들이 들어 있었다. 절대 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어 호스트바에는 많은 야한 얘기들이 존재한다. ‘현실이 이래, 돈 벌기 위해선 이런 짓도 해’라는 차원에서 걸러내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선정성으로 관심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보다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에 ‘타협’을 했다. 물론 스태프와 영화 관계자들이 뜯어 말리기도 했다.(웃음) 그렇게 절제해서 찍었음에도 심의를 앞두니 걱정이 됐는데, 무사히 통과되고 관객들을 만나게 돼 다행이다.”

이송 감독은 ‘후회하지 않아’의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 통과와 관련해 재치있는 유머를 구사했다.

“동성애를 다룬 우리 영화의 심의 통과를 두고, 영화계에선 ‘바다이야기가 큰 일 해줬다’고 말한다.”

영등위의 심의를 통과했던 성인오락게임 ‘바다이야기’가 지난 여름 말썽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었기에, 같은 기구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영화계가 ‘덕’을 보았다는 의미.

“고현정-전도연 욕심,심은하 은퇴 아쉬워”

당분간 퀴어영화에서 벗어나 상업영화를 하겠다는 이송희일 감독. 어떤 배우들을 마음 속에 찜해 뒀을까.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가 많다. 안정된 기반에서 자기만의 연기 패턴을 가지고 있는 배우가 좋다.”

구체적으로 어느 배우와 작품을 하고 싶은 지 재차 물었다.

“특히 여배우들을 좋아하는데 고현정, 전도연과 영화를 해보고 싶다. 영화를 배울 때부터 심은하를 좋아했는데 안타깝게도 은퇴했다. 심은하를 보며 ‘어떻게 저런 여신이 있나’ 생각했었다. 좋은 배우들과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왜,통속적 멜로냐구?

‘후회하지 않아’는 통속적인 멜로영화다. 1970∼80년대 한국영화를 풍미했던 ‘영자의 전성시대’ 류의 호스티스 영화나 드라마 ‘청춘의 덫’의 퀴어 버전이다. 시사회에서 이송 감독은 작정하고 통속적인 멜로 영화를 지향했노라고 밝힌 바 있다.

‘한물 간 듯한’ 혹은 사람들이 ‘고리타분’하다며 외면하는 통속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뭘까.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오래 전에 써놨던 트리트먼트이며, 2개의 페이퍼에서 시작됐다. 영화 마지막 장면과 관련된 신문 기사, 우연한 계기에 인터뷰하게 된 호스트바 종업원의 얘기가 그것이다. 호스트바와 관련해서는 동성애자 사이트에 올라있는 글들을 참조하기도 했다. 사이트에는 ‘절대 호스트바 선수들은 사랑을 하면 안된다’는 조언을 비롯해 패가망신한 사연 등 많은 얘기들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접한 여러가지 실제 이야기들을 끌어다 썼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적으니 ‘통속’이 되더라는 얘기다. 통속에 대한 그의 지론이 이어졌다.

“일단 나는 통속을 좋아한다. 우리 삶이 통속이다. TV 연속극이나 쇼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밝고 화려한 모습과 현실은 거리가 있다. 실제 우리의 삶, 우리의 이야기는 통속인데 자신의 고루한 일상이 싫어서 ‘통속은 지루하다’고 비난하는 것 같다. 우리 삶이 통속이라 통속을 택했다.”

“다른 척, 특별한 척 하고 싶지 않다”

왜 호스티스 영화의 퀴어판일까.

“고등학교 때 ‘영자의 전성시대’나 김진아 주연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 같은 호스티스 영화에 열광했다. 벽에 포스터들이 죽 붙어있었고, 극장에 들어가 몰래 영화를 보기도 했다. 너무나 재미있었고, 언젠가 꼭 한 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호스티스 영화 속 남-녀의 사랑이 남-남으로 바뀌면 뭔가 달라질 것도 같은데, ‘후회하지 않아’ 속 두 남자의 사랑은 ‘똑같은’ 모습이다. 성의 차이를 떠나 ‘사랑의 본질’이 같아서 일까, 영화적 의도일까. 우문현답이라고, 분명한 답이 돌아왔다.

“기본적으로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큰 사회적 틀거리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존재다. 계급적 적용도 동일하게 받고,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다르지 않은데 ‘뭔가 다를거야’라는 기대심리에 맞춰, 동성 간의 사랑이어서 다른 척 혹은 특별한 척 하고 싶지 않다.”

“동성애자들,보러오지 않을 것”

‘후회하지 않아’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 결국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식의 해피엔딩 영화가 아니다. 동성애자를 옹호하고, 이성애자들에게 성적 소수자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동성애자이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소위 ‘주말 게이’들에게 이기심과 타협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 근거가 어디인지를 ‘직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적 소수자들의 삶과 사랑을 ‘날 것’으로 드러내기에, 어떤 측면에선 되레 동성애자들이 보기에 ‘가슴 뜨끔한’ 영화다.

“동성애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해 스스로 ‘교훈극’이라고 표현한다. 성적 소수자들과 함께 봤으면 하는 영화지만 보러오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현실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엔 어느 어느 극장에 가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보러오는 자체로 동성애자임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안타까운 얘기다. 오히려 동성애자들에게 우호적인 ‘동인녀’들이 많이 봐줄 것 같다. 동인녀가 아닌 분들도 많은 관심을 보내주신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한 치열한 고민’ 하나를 마음 속에 담아가기를 바란다는 감독의 희망이 담긴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16일 전국 6곳 CGV인디영화관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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