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언드러시 리스트음대 총장

안익태 선생의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대 학적부 기록을 발견한 버터 언드러시 리스트 음대 총장은 12일 "기록으로 볼 때 안익태 선생은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인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버터 총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익태 선생이 작곡을 전공했지만 이 곳에서는 첼로를 배우며 첼리스트로도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에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인 리스트 페렌츠와 코다이, 그리고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를 엮어서 한국-헝가리 공동 음악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버터 총장은 리스트 음대 음악학과와 첼로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교수로, 2004년부터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버터 총장과의 일문일답.

--학적부 기록으로 안익태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안익태 선생은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외트뵈시 기숙사에 거주했는데 이는 그가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숙사는 당시 입실이 가장 힘든 곳이었으며, 최고의 학생들만 머물렀던 곳이다. 학생들끼리 경쟁도 심했지만 서로 배우고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는 엘테 대학에 속하지만 당시는 리스트 페렌츠 음대 소속이었다. 또 선생은 작곡을 전공했지만 이곳에서는 첼리스트로도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익태 선생이 배운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일단 안익태 선생이 당시에 배운 교수들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다. 당시는 버르토크 벨러, 코다이 졸탄 등 대가들이 활동하던 헝가리 음악의 전성기였다. 코다이는 물론 쉬페르 아돌프, 바이너 레오 등은 첼로와 실내악에서 최고 전문가였다. 이런 인물들에게 수학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첼로 공연할 때 피아노 반주를 했던 코샤 죄르지도 버르토크의 수제자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이다.

--당시 수업 스타일은 어떠했나

▲음대에서 어떤 교수에게 배우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익히기 위한 것인데 하나는 훌륭한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평가를 받는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교육을 받았다. 안익태 선생이 코다이로부터 작곡 이론을 배운 것도 이런 형식이었을 것이다.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돼 있던데

▲안익태 선생은 외국 장학생으로 당시 모든 비용을 헝가리 정부가 지급했다. 해외 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과 관련해 양국 간 어떤 협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록을 보면 외국인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첫해인 1938-1939년 1년간 만 지급된 것으로 나온다. 이후에는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안익태 선생의 연보에는 1937년에 헝가리에서 1년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건 잘못된 기록이었나.

▲학교의 공식적인 학적부에는 1938년부터 1941년까지 공부했다는 기록 밖에는 없다. 그러나 안익태 선생이 1937년에 와서 코다이와 만나서 개인적으로 사사했거나 학교 입학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은 있다.

--안익태 선생은 1938년부터 3년 간 부쿠레슈티, 로마, 베오그라드, 소피아, 베를린, 취리히, 하노버 등지에서 현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리스트 음대에 학적을 두고 그렇게 할 수가 있나.

▲당시 음대에 다니던 연주자, 작곡가들은 유럽 각지로 연주 여행을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것이 안익태 선생 만의 특별한 일은 아니며,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안익태 선생의 음악을 접해 본 적이 있나.

▲아직은 없는데 한번 CD를 구해서 들어볼 생각이다. 리스트도 헝가리 애국가의 일부를 자기 음악에 활용하기도 했는데 내년에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인 리스트와 코다이, 그리고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를 엮어서 한국-헝가리 공동 음악회를 여는 것을 제안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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