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북한 실상을 보여주려 만든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저는 무척 슬플 겁니다. 가족의 이야기,어느 나라 사람이나 공감할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올해 베를린영화제 넷팩상과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던 다큐영화 ‘디어 평양’이 오는 2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재일교포이며 재일 조총련의 간부의 딸인 양영희(41) 감독이 수 년간 북한을 직접 방문해 찍은 평양 시민들의 평범한 생활상이다. 이는 대니얼 고든 등 외국 감독들이 찍은 평양 다큐 속 모습과는 또 다르다. 카메라가 담은 평양 사람들은 다름 아닌 양 감독의 세 오빠와 그 가족이기 때문. 여동생을 대하는 오빠와 고모를 대하는 조카들의 격의 없는 행동을 통해 우리네 가족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양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의 아버지 양공선(79)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15세에 일본에 이민간 후 북의 사상에 동조해 조총련 활동에 일생을 바친 인물. 1971년에는 세 아들 모두 ‘귀국’이라는 이름으로 북으로 보냈다. 양 감독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자랐지만 미국 뉴욕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고 10여년에 걸쳐 찍은 이 영화를 세계에 내놓기 위해 2년 전 국적을 한국으로 바꿨다.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양 감독은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와 만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선택할 수도 없이 속하게 되면서 그 구성원이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며 북한식 교육을 받았지만 동시에 일본의 자유로운 문화를 누리며 자랐어요. 그러다보니 조국(북한)에 대한 충성만 강요하고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공동체를 탈출하고만 싶었죠. 그런데 저는 부모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 수 있지만 이미 북한에 가버린 제 오빠들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오빠들의 처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고 가족을 떠나기보다는 이해하려 노력하게 됐어요.”
그렇게 다가간 결과일까. 젊은 시절 누구보다 사상에 철저했고 그에 반하는 딸의 행동에 불같이 화를 냈다는 아버지는 화면 속에서는 무척 너그럽다. 딸이 일 때문에 국적을 바꾸고 싶다고 하자 “너만 특별한 거야”라며 완곡하게 허락하고 “오빠들을 북한에 보낸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자 “벌써 가버린 거 할 수 없지만 안 보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북의 오빠들은 자신들이 영화에 담기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본에 혼자 남은 여동생이 영화감독이 돼 세계에,한국에 진출한다면 멋지겠구나라고 받아들여줬어요. 그러나 저는 영화를 편집하면서 행여나 오빠들에게 해를 입히지나 않을까 걱정돼 울기도 많이 했어요. 심지어 제 영화 때문에 오빠들이 고생하는 꿈을 몇 년 동안이나 꾸기도 했지요.”
‘디어 평양’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제게 평양은 정치적 상징도 무엇도 아닌 그저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디어’(dear·친애하는)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 평양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가족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 감독은 차기작으로 북에서 사는 조카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구상중이다. ‘디어 평양’은 명동 CQN극장에서 단관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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