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진 베를린 필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엠마누엘 파후드 콘서트는 연주가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음악적 성과들을 집대성하는 무대였다.
연주가의 사정으로 예정되어 있던 베버의 소나타가 브람스 소나타로 대체되면서 2부 순서는 가장 최근 발매된 그의 브람스 소나타 신보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뿐만 아니라 1부에 연주된 풀랑크의 소나타와 세자르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앙코르로 연주한 클로드 볼링의 크로스오버들은 과거에 이미 음반으로 발매돼 검증된 레퍼토리들이었다.
유일하게 플루트를 위한 오리지널 원곡으로 연주된 풀랑크의 소나타는 작품에 내재된 색채감이 명쾌하게 묘사된 호연이었다.
파후드 특유의 낙천적인 음색과 여유있는 테크닉은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멜랑콜리보다는 활기와 생동감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이어진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는 본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파후드가 플루트로 편곡한 것이다.
플루트의 호흡과 음역을 고려해 템포와 옥타브가 상당 부분 편곡됐지만 작품의 기존 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템포를 빠르게 조정했다고는 하지만 한 호흡으로 소화하기 힘든 패시지들을 파후드는 놀랍도록 긴 프레이징으로 한숨에 질주했으며 그 와중에도 섬세한 묘사들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케일은 플루트라는 악기의 한계상 온전하게 복원되지 않았지만 대신 현악기에서는 간과되었을 작품의 세부적인 아름다움이 파후드의 숨소리를 통해 멋지게 복원되었다.
파후드의 오랜 리사이틀 콤비인 에릭 르 사쥬는 섬세한 플루트에 시의적절하게 반응하며 최고의 호연을 이끌어냈다.
2부 순서로 연주된 브람스 소나타는 클라리넷 원곡을 역시 파후드가 플루트 곡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소나타 1번과 2번 양곡 모두 클라리넷의 음색이 가지고 있던 저음의 우직한 무게감은 플루트로 바뀌면서 섬세하고 예민한 정서로 변화되었다.
자칫 플루트의 높은 음색으로 인해 가볍게 둥둥 떠다닐 수도 있었을 곡에 전반적인 무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에릭 르 사주의 피아노였다.
브람스가 군데군데 삽입해 놓은 다채로운 대위와 화성을 느릿느릿 차례로 섭렵해가는 동안 르 사주는 플루트가 숨이 가빠질 때 즈음 알아서 프레이즈를 끊어주는 한편 음색의 변화를 통하여 단조로운 진행을 탈피했다.
1번보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작품인 2번은 플루트와 피아노 모두 다소 어깨의 짐을 벗어던지고 가볍고 느슨하게 연주를 진행했으며, 1번보다도 플루트의 장점이 더욱 돋보이는 연주였다.
브람스 소나타는 가을의 스산한 정서에 더없이 어울리는 레퍼토리였지만 역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진지함은 관객들의 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듯싶다.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를 파후드 자신 또한 감지했는지, 앙코르로 그는 클로드 볼링의 넘버 두 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감미로운 선율과 더블텅잉(double-tonguing)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재기발랄한 연주에 청중들은 본래의 활기를 회복하고 공연장을 나설 수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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