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프로다.
'팬티 패션'이라 불릴 만큼 무대 위 파격적인 의상도 여전히 당당하게 소화하는 가수 엄정화와, 푼수에 가까운 순진한 얼굴로 막춤을 추며 술에 취해 키스도 기억 못한 채 널부러지는 배우 엄정화. 전혀 다른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아 보이는 프로페셔널이다.
영화배우로서 현실에 밀착한 연기를 보여왔던 엄정화가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섰다. 다니엘 헤니와 함께 한 로맨틱 코미디 'Mr.로빈 꼬시기'(7일 개봉)가 그것.
다니엘 헤니가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 같은 영화이지만 엄정화가 없었다면 여자들의 판타지를 한껏 자극하는 이 영화는 결코 땅에 붙어 있지 못하고 공중에 붕붕 뜬 영화가 됐을 것이다.
느닷없이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
"트렌디한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오로라 공주'나 '호로비츠를 위하여'나 모성애를 기본으로 한 영화였잖아요. 더 이상 나이먹기 전에 이런 영화 한 편 해보고 싶었죠. 후후."
나이를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 하는 솔직한 그의 답변.
"시나리오를 보며 공감한 부분이 있었어요. '도대체 사랑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죠. 민준의 대사 중에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뭐가 나쁘냐'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걸 보고 눈물이 났어요. 나도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들에게 또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고, 저 역시 그런 위로에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잘생기고, 냉정하지만 한편으론 젠틀하고, 능력 있는 남자인 로빈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점점 더 많이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꼭 그런 남자일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사랑, 그 자체일 뿐.
"민준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상처받을까봐 겁내요. 그런 민준의 테마곡은 제가 음악감독 정재형 씨에게 외로운 제 심경을 이야기한 건데 가사로 썼더라고요. 그래서 그 곡을 들으면 가슴이 싸~해요."
발랄하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선보일 배우가 너무 진지한 '사랑론'을 이어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어려워져요.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게 요즘 저로서는 더욱 어렵게 느껴지더군요.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도 같고. 그렇지만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건 여전하죠."
엄정화는 일은 잘하면서도 남자친구에게 번번이 차이는 등 연애는 F학점 수준인 민준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로빈을 꼬신다며 우렁각시처럼 청소를 싹 해놓고, 형형색색의 도시락을 싸느라 잠을 설친다. 도시를 사랑한다면서 도회적이지 못한 감성으로 연애에 접근하는 여자.
"사랑에 헌신적인 여자는 여우가 될 수 없죠. 그렇게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여자라면 연애 스타일을 재고, 남자를 잡았다 당겼다 할 줄 모를 거예요. 민준은 다 큰 남동생이랑 순대내기 씨름을 할 정도로 순수한 여자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일 겁니다."
그래서 그는 민준을 어수룩하지만 사랑스럽게 표현해냈다. 그가 보는 민준은 실수로 욕을 하더라도 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여자,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여자, 사람들이 봤을 때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 '쟤 어떡해… 딱 나 같아'라고 말하는 여자다.
음반 이야기를 피할 수는 없다. 얼마전 TV로 중계된 한 시상식에서도 그는 가수로서의 모습과 배우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음반은 제가 하고 싶을 때 낼 거예요. 무대에 서는 걸 그만두고 싶지는 않거든요. 다만 계약 관계에 의해 쫓기듯 내는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음악, 꾸미고 싶은 무대를 만들 겁니다."
찬찬히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작업으로 채워져왔다. 그럼에도 아직껏 "이제 막 영화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하는 엄정화. 프로는 아름답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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