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이 방송작가 에이전시의 대표를 맡는다면? 방송사 카메라맨 출신이 연예 사업에 나선다면?
방송작가 8명이 소속된 스토리허브는 MBC 보도국 파리 특파원, 사회2부장, 사회3부장을 거친 기자이자 마감뉴스를 진행자였던 홍승관 씨가 이끄는 업체다. 작가들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대본을 방송사나 독립제작사에 '납품'한다.
기자 출신답게 방송 대본을 쓰는 데 홍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리얼리티'. 엉덩이로 앉아 쓰기보다는 발로 여기저기 다니며 '취재'해 만든 대본만이 시청자에게 사실감을 전할 수 있다는 것.
홍씨는 작가들에게 '취재 지시'를 내리는 것뿐 아니라 20년간 기자로 있으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취재 기술을 활용, 본인이 직접 대본을 써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연예인을 양성하고 드라마ㆍ영화 등을 제작하는 업체 튜울립ENT 역시 MBC에서 16년간 일한 박정문 씨가 이끌고 있다.
박씨는 MBC 드라마 '주몽'의 4회 방송분까지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 출신.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달콤, 살벌한 연인' 등 HD영화를 만든 MBC에서의 카메라맨 경력은 질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박씨는 자부한다.
이화여대 '얼짱' 배구 선수 한지연, 미스코리아 출신 이규희 등 연예인을 양성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천정명, 이요원, 봉태규 등이 소속된 J&H필름과 공동작업도 모색 중이다.
홍씨와 박씨가 이처럼 작가와 연예 세계에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건 MBC가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내독립기업제도 때문이다.
사내독립기업제도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원을 회사가 3년간 지원해 주고 사업이 성공 궤도에 오를 경우 해당 사원으로 하여금 MBC와는 별도의 독립 법인을 만들도록 하는 제도. 독립 법인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사업체는 공식적으로 MBC 내부조직에 속한다.
지난 1월 공모에 기자, PD, 기술 등 MBC 내 각 분야 사원들이 조명업, 여행업 등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냈으며 여러 차례 심사를 거쳐 지난 7월 말 홍씨와 박씨의 아이템이 이 제도의 첫 케이스로 채택됐다.
지난 8월 말 사업을 시작한 홍씨와 박씨에게는 올해 지원액으로 2억7천여만 원과 2억9천여만 원이 각각 지급됐으며 이 금액은 사업 성과에 따라 해마다 달라진다.
이 제도가 사원들로부터 더욱 호응을 얻는 것은 이른바 '인큐베이팅' 과정인 3년 동안 MBC 사원 신분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고 사업이 성공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일했던 직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의 경우엔 여전히 MBC 사원 신분을 유지하는 덕에 회사의 고급 HD 촬영장비를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MBC는 사업을 성공시켜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진취적 사고방식을 사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MBC뿐 아니라 KBS도 사내기업운영제도라는 이름의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PD, 기술 분야 직원이 낸 아이템이 채택돼 효과음 제작업체, 교양ㆍ오락 프로그램 프로덕션, 지역 농어촌 관련 프로그램 프로덕션, 국악 전문 프로그램 프로덕션 등 4개 업체가 차려졌으며 이 중 한 업체는 매우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고 KBS는 전했다.
MBC의 사내독립기업제도 주무를 맡고 있는 글로벌사업본부 관계자는 "이미 대기업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시행된 제도지만 당장의 이익 창출보다는 직원의 능력 계발과 진로 모색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차별점이 있다"며 "현재에 안주하기 쉬운 공영방송 직원의 특성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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