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도 한류로 세계에 뻗어나가야 합니다. 세계화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 같아 기쁩니다."
17일(현지시간) 뉴욕 카네기홀 잔켈홀에서 독주회를 가진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문재숙(53) 이화여대 교수의 얼굴은 연주회가 끝난 뒤 상기돼 있었다.
카네기홀은 연주자라면 누구나 서 보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 그는 "한 서양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주 도중 '얼씨구' 대신 '와우'라며 추임새를 넣은 것을 보고 국악도 한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일을 두고 시끄러운 소리가 많아 한국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 이번 무대를 마련했다"면서 "앞으로 국악의 세계화와 후학 양성에 더욱 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보유자 인정 당시 남편이 국정원 현직 차장이었고, 대통령 비서실장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한 문희상 의원이 오빠라는 사실 등으로 인해 많은 구설에 올랐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 공연을 마친 소감은.
▲이번 공연은 다양한 측면에서 나에게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김죽파류의 계승자로서 전통국악을, 예수를 사랑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캐럴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한마디로 성악과 기악, 전통과 현대, 종교성이 골고루 가미된 공연이었다.
-- 다소 난해한 현대음악도 공연에서 연주했는데.
▲나는 전통의 계승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도 있다. '가야금 산조'라는 장르도 세월에 따라 변해야 한다. '꾼'들이 가끔 듣는 나쁜 말 가운데 하나가 '오뉴월 불던 가락 동지 섣달까지 분다'라는 말이다. 산조는 항상 새롭게 연주해야 나중에 '김죽파류'처럼 '~류'가 탄생한다.
-- 1979년 처음 가야금 산조를 녹음하고 최근에도 두 딸과 녹음 작업을 했는데, 그동안 스스로 변한 게 있다면.
▲돌에 이끼 낀다고 나이가 50이 넘으니 연주할 때 숨이 찬다.(웃음) 20대 때 연주를 지금 들어보면 손가락이 마치 제트기 날아가듯 했다. 지금은 원숙미나 노련미 등에서 많이 늘었지만 손가락은 젊었을 때를 못 따라간다.
-- 향후 계획은.
▲앞으로 김죽파 산조 전승 연구에 더욱 매진하겠다. 또 국악을 세계화하는 데도 앞장서겠다. 이번 카네기홀 공연이 폭발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쓰겠다. 이번에 일부러 제자들과 함께 온 것도 이런 무대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체험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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