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음력 11월15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아담한 사찰 안양암(安養庵). 청아한 목탁 소리에 낭랑한 스님의 독경(讀經) 소리가 법당 문틈 새로 번져나왔다. 고즈넉한 사찰 마당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온기가 감돌았다.
이날은 세상을 등진 가수 고(故) 김광석의 기일(忌日). 그는 1996년 1월6일 사망했지만 가족과 팬들은 그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 안양암에서 해마다 음력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법당 안에는 형 김광복 씨를 비롯해 가족ㆍ팬 등 15명 남짓되는 이들이 고인을 위해 합장(合掌)하고 있었다.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장보살 지장보살…". 스님은 중생을 구제해 극락으로 이끈다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또 불렀다. 부처를 향해 합장한 모두의 두 손은 망자(亡者)의 안녕을 비는 예였다. 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김광석은 영정(影幀) 속 흑백사진으로 환히 웃고 있었다.
30분 가량의 예불(禮佛)에서 '김광석 영가(靈駕)'를 읊조렸던 스님은 "이제 제사를 지냅시다"라며 엄숙한 기운을 갈랐다. 광복 씨의 초헌(初獻:제주가 첫 술잔을 올리는 의식)을 시작으로 가족, 팬들이 뒤이어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제를 올리는 내내 김광석은 그 표정 그대로 웃고 또 웃고 있었다. 법당 천장에 소담스레 매달린 붉은 연등이 영정에 드리웠다. 마치 그는 붉은 화환을 건듯 행복해 보였다.
안양암은 청소년기를 창신동에서 보낸 불교신자 김광석의 발길이 종종 닿았던 곳이라고 한다. 성장 환경은 그의 자작곡 중 자연친화적이고 불교 사상이 스민 곡이 많은 데도 영향을 줬으리라.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없이/부초처럼 떠다니다가/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물과 함께 썩어가겠지/일어나 일어나/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中)
목에 하모니카를 걸고 통기타를 치던 김광석. 먹을 머금은 음색은 농도를 조절하며 대중의 가슴과 추억에 오롯이 파고들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원'을 거쳐 솔로로 데뷔한 그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수많은 곡으로 사랑받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훌륭한 보컬리스트'에서 싱어송 라이터로, 가객(歌客)ㆍ음유시인으로 불렸다.
제사를 지내고 법당을 나서던 광복 씨는 김광석의 음악을 사랑하는 인터넷 모임인 '둥근소리(oneum.net)' 회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한결같이 그날을 기억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준 팬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의 표시였다. 뒤늦게 꽃을 안고 찾아온 여성 팬도 있었다.
5년째 김광석의 제사에 참여한 30대 남성 팬 김모 씨는 "해마다 안양암을 찾는 팬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지난해 10주기 땐 유족간 저작권 분쟁이 진행중인 데다 음악계 공식 기념행사 없이 팬들의 추모 공연만 펼쳐져 더욱 가슴 아팠다"고 했다. 고인의 모친ㆍ형, 고인의 아내는 김광석 노래에 대한 저작인접권 소유를 놓고 수년째 소송을 벌여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팬들의 추모 무대는 이어진다. 96년부터 매년 2월 추모 공연 '작은 음악회'를 펼치는 둥근소리는 2월24일 오후 4시ㆍ7시30분 서울 대학로 공연장 질러홀에서 12번째 무대를 올린다. 앞서 6일 오후 7시30분 대전 세이백화점 아트홀에선 김광석 추모 11주년 기념콘서트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열린다.
한 대중음악 관계자는 "종종 신세대 스타를 향한 일그러진 팬덤 문화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김광석 씨가 자리를 떠난 11년간 곁을 지킨 팬들이야말로 진정성이 있는 가수와 팬의 관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졌다. 절을 나서며 좁은 골목을 내려오는 길, 김광석의 '안녕 친구여'란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만남은 헤어짐이라/저마다 품은 꿈으로 걸어가/안녕 친구여/다시 모여 웃을 날 기약하며/안녕~'. 마치 그의 인사 같았다.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