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노병은 죽지 않았습니다."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을 받은 한혜숙의 짧은 수상 소감이 TV와 스크린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MBC가 지난해 11월 초부터 내놓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와 나문희의 역할은 'N분의 1' 이상.
시트콤의 특성상 딱히 누가 주연이랄 것은 없지만 이순재와 나문희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코믹 연기로 극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
권위적이면서도 소심한 한방병원장 이순재는 아프게 침을 맞고 돌아간 초등학생 환자가 보낸 '복수성' 문자 메시지를 해독하느라 끙끙대는 할아버지를, 아내 나문희는 남편 몰래 밍크코트를 사입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다 들켜버리는 말 많은 할머니를 맡아 연일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새 주말극 '하얀 거탑'(극본 이기원, 연출 안판석)에서도 병원 부원장 우용길 교수와 외과과장 이주완 교수를 맡은 김창완과 이정길의 무게중심이 빛났다.
김창완과 이정길은 타고난 수술 실력으로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장준혁(김명민)을 때로 견제하고 때로 이용하면서 노련한 처세술을 보여주는 연기로 극의 줄기인 병원 내 암투를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특히 그간 주로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역으로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던 김창완은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날선 눈빛 연기와 잇속 계산에 빠른 캐릭터로 드라마의 한 축을 든든히 지켰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사극 바람에 중견 연기자들의 활약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SBS '연개소문'의 김갑수는 광기 어린 폭정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는 수양제 역으로 지금껏 2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KBS1 '대조영'도 이덕화(설인귀)와 임동진(양만춘) 등 중견 연기자들의 활약에 주인공 최수종(대조영)의 연기가 어우러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연에 머물지 않고 스크린 한가운데 서는 중견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TV 시트콤의 인기를 이어 영화화된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는 김영옥과 서승현, 김혜옥이 기세를 올렸고 곧 개봉을 앞둔 '마파도2'에서도 전작에 이어 김지영, 여운계, 김을동 등 중견 배우들이 나란히 주연을 맡았다.
그동안 임채무와 김수미, 이영하 등 중견 연기자들이 코믹 연기를 불사하며 꾸준히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왔지만 최근에는 20~30대 젊은 배우의 사랑 연기에 비중을 두는 미니시리즈보다 사극이나 시트콤, 전문직 드라마가 부각되면서 중견 연기자들의 비중과 역할이 함께 돋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방송 관계자는 "최근 젊은 배우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미니시리즈보다 사극 등 다른 형태의 드라마가 눈길을 끌면서 중견 연기자들의 역할이 도드라지는 면이 있다"며 "중견 연기자들이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작품을 받치게 되면 극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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