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파도'가 309만 명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흥행 기록을 세웠으니 어찌 보면 2편 제작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여운계, 김을동, 김형자, 김수미, 길해연 등 '빡센 할머니'들의 대활약은 아류작까지 만들어냈고, 이문식은 주연급 배우로 올라선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할머니들의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는 작품이기에 속편을 만들기에 적당하다 할지라도 어찌 됐든 속편은 전편의 인기에 대한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그런데 '마파도2'에 대한 반응이 꽤 좋다. 전편을 능가한다는 반응이다. 전편의 재미에 감동을 섞었다. 할머니들이 가슴 속에 품고 고이 간직한 첫사랑을 끄집어내 보는 이들에게 '할머니도 여자'임을 느끼게 한 것이 가장 큰 차별점.
데뷔작인 코미디 영화 '돈텔파파'로 평단의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으나 고작 15억 원의 제작비로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이상훈 감독은 실은 유명 예능 프로그램 PD 출신.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로 방송가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시트콤 '여고시절'을 연출했다.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를 통해 노인들의 푸근한 감성을 보여줘 도시민들이 잊고 지낸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이 감독은 '마파도2'에서 할머니들의 순수한 첫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접근을 한다.
노배우들의 팔팔한 기가 전해져왔을 뿐 아니라 '마파도'로 주연배우로 올라선 뒤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이문식도 '마파도2'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장점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좋은 세상 만들기'를 할 때 여든 살이 넘은 한 할머니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북 출신이신 그 할머니가 죽기 전 소원이 있다면 첫사랑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들에게도 고왔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는 게 가슴에 내내 박혀 있었습니다."
이 감독은 "할머니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속편 연출 제의에 응했다"며 "전편에서는 할머니들이 이야기의 객체였지만 이번에는 주체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할머니들의 사랑을 주제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기력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노배우들. 그들의 자존심은 젊은 스타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다행히 출연배우들과 방송에서 작업한 적이 있었어요. 여운계 선생은 'LA아리랑' 때, 김지영 선생은 '여고시절' 때, 김형자 선생은 '체험 공포특급'에서, 김을동 선생은 '사랑과 우정'에서 각각 작업해봐 그 분들의 성격을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감독이 평한 배우들의 성격은 천양지차. 나이순으로, 김지영은 사리분별이 정확하며 여운계는 아직도 소녀다운 감성이 지극한 배우. 김을동은 의리 있고 주변 사람들을 조화를 이루게 하며, 김형자는 여전한 젊음을 간직한 배우라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 출연으로 바쁜 노배우들을 위해 전남 영광에서 진행된 촬영을 1주일에 이틀만 진행했고, 그 이틀도 새벽 2시를 넘기지 않았다. 배우들의 체력을 위해서다.
"영화 데뷔작인 '돈텔파파'를 하면서 많이 배웠죠. 그때는 영화에서는 코미디가 방송보다 더 세야 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세게 나갔어요. 한번 해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죠. 그저 방송에서 하던 것처럼 툭툭 던져놓으면 관객이 받아들인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반 시사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영화 관객은 돈을 내고 즐기고 오겠다고 작정해서인지 같은 코미디라도 방송보다 웃음의 강도가 훨씬 높더군요."
이제 갓 두 편째를 내놓은 초보 감독이지만 오랜 세월 방송계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서인지 영화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객관적이면서도 날카로웠다. SBS 재직시절 할리우드의 우드 할리 프로덕션에서 1년간 시트콤 연수를 하며 철저한 준비와 정확한 시간 관념으로 제작하는 모습을 본 것도 큰 도움을 줬다.
"32회차에 모든 촬영을 끝냈습니다. 빨리 찍는다고 설렁설렁 찍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가능하죠. 한 장면 찍고 한 시간 정도 고민하다 또 한 장면 찍는 몇몇 젊은 감독들을 보면 수업료를 남의 돈으로 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소한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코미디를 통해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하려면 많은 관객이 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했다.
"이왕 좌판을 벌였으면 구경꾼이 많이 와야죠. 구경꾼이 와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많이 듣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코미디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좋은 '외피'다.
"웃음은 수단일 뿐이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영화를 보고 웃다가 그 속에 들어있는 뭔가를 하나 가슴에 담아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감독은 곧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다. '리틀맘'에서 소재를 따 한 철없는 고등학생이 아이아빠가 된 후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 물론 코미디다.
"언제부터인가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조폭 영화가 됐어요. 아무리 망나니 같은 아이라고 욕먹는 아이들일지라도 그들에게 그들의 고민이 있고, 그들 역시 우리 기성세대들의 자식이며, 그들도 아무 생각 없이 살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싶습니다."
"코미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인생 이야기"라는 이 감독은 "보는 내내 웃으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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