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24' '로스트' 등 미국의 TV시리즈물들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국내 드라마들도 항상 '한국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와 같은 시리즈물을 표방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드라마에는 회당 30억~4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영화 한 편의 제작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겨울연가' 등 드라마를 선봉으로 한 '한류열풍'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스타의 힘에 의존한 작품으로는 국내 시청자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예전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제 세계 시장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승부를 겨뤄야 할 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CJ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 진출을 목표로 드라마 제작 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기업 드라마 제작 진출 본격화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 여건을 미국과 비교하면 일단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 거대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대형 드라마들과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드라마의 대형화, 산업화가 대두하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최대의 영화 제작ㆍ투자ㆍ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15일 첫 방송되는 KBS 2TV 월화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의 공동제작사로 이름을 걸고 드라마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CJ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제작사 에이트픽스에 2대 주주로 참여했고, '비천무' '어느 멋진 날' 등의 드라마에 직접 투자를 하는 등 지속적으로 드라마 사업을 진행해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꽃피는 봄이 오면'을 통해 자체 제작을 시작하게 된 것.
이에 앞서 이미 SK텔레콤과 KT 등 거대 통신 기업들도 엔터테인먼트사들을 인수하면서 드라마 제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인수한 iHQ의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는 '봄날' 'Dr.깽' 등을 만든 드라마제작사이기도 하다. KT는 '프라하의 연인' '불량주부' '황진이' '주몽' 등의 제작사인 올리브나인의 최대주주가 됐다.
◇목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
CJ엔터테인먼트 측은 "드라마 자체 제작은 아시아 최고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할리우드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처럼 영화, TV, 음악 등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해외에 공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최준환 제작투자사업부장은 "한류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장만 바라보고 드라마 사업을 하는 것은 무리"라며 미국 등 세계 시장에 진출이 장기적인 목표임을 강조했다.
최 부장은 "기존 16~20부작 미니시리즈가 국내 시청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포맷이지만 한국 미니시리즈가 언제까지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현재는 공동제작 형태로 드라마 사업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단계지만 해외에서 통할 수 있는 드라마 제작이 목표이며, 미국식 시즌물 형태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을 넘어서서 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하겠다는 것이 드라마 사업에 임하는 대기업들의 청사진인 것. KT가 최대주주인 올리브나인은 지난 8일 마피아 보스로 활동하며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산업에까지 영향을 끼친 '제이슨 리'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제작해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 반응은 일단 긍정적
이처럼 대기업들이 드라마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면서 드라마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물론 거대화, 산업화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지만 업계 반응은 일단 긍적적이다.
김현준 KBS 드라마1팀장은 "대기업에서 양질의 자본으로 전문가들을 영입해 드라마 제작을 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기업이 수익만 고려하지 말고 공영성 측면을 반드시 동반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창식 김종학프로덕션 제작이사는 "대기업의 드라마 사업 참여는 매우 고무적이며 드라마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며 "현실적으로 방송사가 지급하는 예산으로 외주제작사가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은 '자살행위'인데 대기업들의 참여로 난잡한 간접광고(PPL)를 지양하고 문화사업으로 나아가는 '윈-윈'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이어 "현재의 한류시장인 아시아를 뛰어넘으려면 대기업이 참여해야 가능하다"라며 "21세기 영상산업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스케일 있는 작품으로 큰 그림을 그려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세계 시장 진출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니시리즈 형태에서 탈피해 시즌물로 전환, 멜로 일변도에서 벗어난 창조적인 기획, 스타가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한 투자 등 체질 개선이 이뤄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기업의 진출이 위기의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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