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당정 간 줄다리기를 계속 해오던 민간택지의 분양원가 공개는 수도권 전역과 지방의 투기과열지구에 한정해 9월부터 실시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분양가 상한제와 함께 분양원가 공개의 민간택지 확대로 지난 99년부터 시행되었던 분양가 자율화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힘겨루기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두말할 것 없이 가장 바람직한 시장구조는 시장에 참여하는 두 주체들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 즉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가격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이다. 경쟁적인 시장구조 하에서 부족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시장조절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경쟁적인 시장구조를 가정한 것이며, 만약 비정상적인 시장구조 때문에 시장의 실패가 나타난다면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분양주택시장은 선분양제를 고수하고 있어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마저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특히 저렴한 가격으로 공공택지를 분양받으면서도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분양제가 지속되는 한 분양원가 공개와 같은 정부의 분양주택시장 개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분양원가 공개 반대론자들은 “왜, 분양주택에 대해서만 원가공개를 요구하느냐”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주택은 소비자가 거래하는 재화 중 가장 고가이고 그 특성상 정보가 공급자에게 편중되어 있는 정보의 비대칭이 나타나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철근을 얼마나 썼는지, 배관 설비는 어떠한지, 어떤 수준의 마감재를 사용했는지 등, 공급자는 훤히 알고 있지만 소비자는 육안으로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주택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분양주택시장은 실체도 없는 아파트를 미리 분양하고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비자주권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 활동의 자율권과 경영의 노하우를 보장하는 것도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민영아파트까지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보다는 우선 민영아파트가 공급되는 지역의 주변 공영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함으로써 소비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주요 대상은 공영아파트라고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선분양제에서 분양원가 공개는 2-3년 후의 건설비용 추정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과대 계상될 가능성이 크며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설사 주택업체가 정확한 분양원가에 기초해서 주변 시세보다 값싸게 분양한다고 하더라도 선분양제에서는 투기적 수요의 기승으로 주택가격의 안정을 기할 수 없다.
우리 소비자들은 새차가 중고차보다 비싼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새아파트가 중고아파트보다 비싼 것은 쉽게 용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새아파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분양가를 대폭 인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거래되고 있는 중고아파트 가격은 훨씬 더 큰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더라도 민영아파트의 원가까지 스스로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공공아파트의 원가공개를 통해 민영아파트의 원가를 추정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 스스로 결정한 소비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임 덕 호 한양대학교 경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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