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상 경력’ 영화들의 명암·‘포도나무…’ ‘더 퀸’ ‘드림걸즈’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외국영화상에서 수상한 영화들은 관람하기 전부터 기대를 갖게 한다. 때로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이 크기도 하고, 부푼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기도 한다.

유명 영화상 수상작들의 명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PP 코닥상을 수상하고 2007년 카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포도나무를 베어라’, 2006년 베니스 영화제와 2007년 골든 글로브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수많은 비평가협회에서 상을 받은 ‘더 퀸’, 2007년 골든 글로브에서 뮤지컬/코미디부문 최우수 작품상,남우조연상,여우조연상을 받은 ‘드림 걸즈’.

화려한 수상 전적을 지닌 3편의 영화를 최근 잇따라 만났다. ‘명불허전’의 대작도 있고, 작품성은 높되 관객과 감동을 나누기엔 부족한 영화도 있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고요한 외침

먼저 종교와 구원을 소재로 한 멜로 드라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주연을 맡아 종교와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는 젊음을 보여준 서장원과 이민정, 수도원 신부 역을 맡아 영화에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기주봉 등 출연자들의 연기는 진지하다. 차분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 것이나, 호들스럽지 않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의 색채와 분위기에 적합하다. 일반인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신학교나 수도원의 생활이 카메라에 담겨진 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영화의 내적 성찰과 철학적 사색은 깊었으나 ‘고요한 외침’이다. 민병훈 감독은 쉽지 않은 주제의식을 전달함에 있어 관객과의 소통 지점을 찾지 못했다. 고민과 번뇌를 의미하는 포도나무를 벨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제목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의미조차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되 극장을 나서는 순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정답은 아니되 고민의 단초라도 쥐어주면 좋으련만, 텍스트 자체를 머리와 마음 속에 용해내는 것조차 녹녹하지 않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 관객과의 철학적 대화가 중요하고 뜻깊을 수 있는 작품임에도, 영화는 ‘자폐적’인 경향을 띄고 관객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더 퀸’, 영국 왕실을 위한 ‘용비어천가’?

‘더 퀸’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을 배경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선택’에 관해 다룬다.

당시 많은 영국민과 세계인들이 다이애나의 죽음을 애도할 때 외면으로 일관하다가 여론의 압박에 밀려 추도사를 하게 된 실화를 영화화했다. 다이애나를 ‘민중의 왕세자비’로 칭하며 민심을 여왕에게 전달하려 애썼던 블레어 총리와 왕실의 명예와 존엄성 수호를 중시하는 여왕 사이의 줄다리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는 결국 사사건건 왕실을 비판하는 블레어 부인이 아니라 ‘후회하는’ 블레어의 입을 통해, 영국 왕실의 존엄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존 인물들이 영화에 등장하고, 민감한 실제 사건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는 흥미롭다.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한 헬렌 미렌의 탄탄한 연기는 극적 긴장감을 부여함은 물론 실제의 여왕을 친근하게 느끼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데 이 영화가 왜 만들어 졌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선명하다. 어쩌면 아직도 다이애나를 그리워하며 영국 왕실에 반감을 가지고 있을 영국 국민 혹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당시 여왕의 선택에 대해 마음으로 이해하게 하며, 어쩌면 우리가 감히 여왕에게 너무 무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케 한다.

블레어의 말처럼, 까짓 다이애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죽은 민중의 왕세자비보다는 실존하는 왕실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은가. 역사는 승자의 것이듯, 영화는 영국 왕실에 바치는 ‘용비어천가’처럼 다가온다. 영국이 더이상 세계를 지배하는 대영제국이 아니어서 일까. 영국인이 아닌 관객 가운데 이 영화의 각본이 지닌 묘미에 흥분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드림걸즈’의 꿈과 열정에 함께 흥분

‘드림걸즈’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다이애나 로스의 여성그룹 ‘슈프림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 1981년 초연됐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음악 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던 영화 ‘시카고’의 각본을 맡았던 빌 콘돈이 감독을 맡았기에 영화는 제작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60∼70년대 흑인 R&B 음악과 꿈의 쇼 무대를 우리 눈앞에 숨쉴 틈 없이 펼쳐보인다. 완벽하게 재현하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해 관객과의 공감 폭을 확장시킨다. 섹시한 핫 디바 비욘세의 매력과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니퍼 허드슨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다. R&B의 선구자이자 쇼 무대의 악동이었던 지미 얼리로 분한 에디 머피는 영화에 에너지와 재미를 공급한 공로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실리를 좇는 제이미 폭스와 명분을 지키는 대니 글로버의 명연기는 영화에 흔들리지 않는 양대 기둥을 세운다.

신나는 파티에 다녀온 듯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면서도 ‘드림걸즈’는 볼거리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가수들의 꿈과 열정만이 아니라 화려한 무대 뒤 고단한 인생을 통해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모든 등장인물들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좇을 때 무엇이 수중에 들어오고 무엇을 잃게 되는 지 보여준다. 특히 에피(제니퍼 허드슨 분)를 통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줌과 동시에, 디나(비욘세 분)를 통해 타협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지 회의케 한다. 우리에게 있어 재능이란 것이 출세와 성공을 위한 도구인지, 그저 재능대로 살다보면 그 과정에서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인지 생각케 한다. 우리의 눈과 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가동시킨다.

영화는 결국 서로 다른 취향을 지닌 관객 각자의 감상이 만족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텍스트 자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감상은 드물다. 짧은 2월,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영화를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더 퀸’은 오는 15일, ‘포도나무를 베어라’와 ‘드림걸즈’는 22일 개봉한다. 사진=위로 부터 ㈜엔터파워,㈜유레카픽쳐스,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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