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윤경(30·여)씨는 최근 주말마다 찾던 백화점에 발길을 끊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TV를 켜고 미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밥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온통 브라운관에 시선을 뺏기기 때문. 최씨는 “강한 중독성이 특징인 미드는 어지간한 영화보다 작품성이 뛰어나다”면서 “치밀한 시나리오와 탄탄한 구성,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 어우러져 안보고는 못배길 정도”라고 말했다.
‘미드’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미국 드라마에 열광한다는 뜻의 ‘미드족(族)’이란 신조어가 생긴 지는 이미 오래고 케이블TV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시청자들은 동호회를 통해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자막제작을 통해 단순 소비자에서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케이블TV 영화채널 수퍼액션은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을 21시간 연속방송했다. 위험을 무릅쓴 공격적 편성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 이 채널의 평균시청률보다 3배나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케이블TV 전체 시청률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8월 미국 FOX TV를 통해 방송된 이 드라마는 부통령의 가족을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친형을 감옥에서 탈출시키려는 천재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석호필’(극중 배역인 스코필드의 한글 이름)이란 애칭으로 유명한 주인공 앤트워스 밀러는 국내 팬카페만 수십개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 의류회사와 광고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충효 수퍼액션 팀장은 “주인공이 펼치는 고도의 두뇌플레이와 실제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밀도있는 디테일, 촘촘한 이야기 구조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 ‘프렌즈’로 시작된 미드 돌풍은 ‘X파일’ ‘섹스 앤더 시티’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거쳐 최근에는 ‘CSI수사대’ ‘그레이 아나토미’ ‘로스트’ ‘24’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라는 국내 인터넷 인프라가 미드족을 키워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 드라마를 공유한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여배우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주인공의 차기작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국내 최고의 미드족 클럽인 네이트의 ‘드라마 24’는 회원수만 13만명에 육박하고 하루 수백건의 글이 올라온다. 개별 드라마나 배우들을 위한 모임은 부지기수다.
미드의 치솟는 인기는 새로운 드라마 소비형태를 낳았다. 자막동호회가 그 것. 초창기 유학파 중심으로 시작됐던 이들 동호회는 이제는 의학, SF 등 분야별로 분업체제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오역을 피하기 위해 이중·삼중의 자체 검열 시스템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의학드라마는 현직 의사나 의대생들이 감수를 하기 때문에 수준이 웬만한 외화번역 뺨친다. 한 인터넷 자막동호회 관계자는 “단순히 미드에 열광하는 차원이 아니라 드라마를 해석하고 만들어간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며 “미드는 일종의 문화코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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