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로프스키가 만난 사람들…이준익·박찬욱·고은 그리고 관객

30여년 만에 HD고화질로 복원돼 15일 개봉한 컬트무비의 고전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을 만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감독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며 한국의 감독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었다.

11일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누구를 만났을까. 마음 같아선 모든 감독을 만나고 싶다던 그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올드 보이’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9일 열린 유료시사회 행사에서 ‘타짜’ 최동훈 감독을 조우했고, 오랜만에 옛친구 고은 시인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을 만났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한국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언급했다. 기자회견과 개별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 때도 한국 대표 감독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영화는 물론 마임, 시, 연극, 만화, 소설 등 많은 예술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보니, 내한 소식을 들은 국내의 아티스트들이 기꺼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1. 가장 먼저 만난 감독 이준익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의 작품으로 천만 관객의 신화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은 과거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 1994년 당시, 수입영화사를 운영했던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수입해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 작품이 바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성스러운 피’였다.

조도로프스키 감독 역시 프랑스 파리에서 ‘왕의 남자’를 보고 감동을 받아 이 감독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이 순조롭게 성사됐다.

영화감독이자 서로의 영화에 대한 팬으로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대화를 이어나간 두 감독.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왕의 남자’ 속 공길 캐릭터와 의상 등 동양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고 극찬했다. 이 감독은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의 국내 개봉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존경의 뜻과 함께 30여 년만의 개봉을 축하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 은 직접 만든 타로카드를, 이 감독은 ‘황산벌’ ‘라디오스타’ DVD를 선물했다.

2. 박찬욱과의 점심식사

인터뷰와 방송 촬영에 지친 노장 감독을 위해, 박찬욱 감독과의 자리는 편안하게 점심식사를 나누며 진행됐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5일 기자회견에서 ‘올드 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를 인상적으로 봤으며, 특히 ‘올드 보이’에 매료됐다고 말한 바 있다. 알고보니 박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광으로도 유명한 박 감독은 이미 학생 때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교과서처럼 두루 섭렵했음을 이번 만남에서 밝혔다.

컬트계의 거장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 감독은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자,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 역시 박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열광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서로의 영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 감독은 ‘쓰리 몬스터’ DVD를,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이번에도 타로카드를 선물했다.

3. 옛 친구 ‘시인’ 고은을 만나다

영화감독이라는 것과 더불어 항상 자신이 시인임을 강조하는 조도로프스키 감독에게 예상 외의 한국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바로 고은 시인.

스페인에서 시 낭송 세미나를 통해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된 두 사람은 고은 시인의 노력 덕에 한국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감독의 내한 소식을 기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 고은 선생은 여러 곳을 수소문 한 끝에 겨우 감독과 연락이 닿았다.

고은 선생은 “스페인에서 감독의 시 낭송을 들었다. 시로 대화한 것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었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때의 충격적인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선생은 또 “이번엔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에 왔지만, 다음 번에는 ‘시인’으로 한국에 오길 바란다”는 기다림의 말을 전했다.

4. 일반 팬으로서 만난 최동훈 감독

‘범죄의 재구성’ ‘타짜’를 연출, 한국영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최동훈 감독은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팬으로서 유료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특별한 사례.

때마침 유료시사회 시작 전, ‘멕시코 대사관 주최 리셉션’ 행사가 있어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시사회 전부터 상영관에 있었다. 최 감독 역시 일반 팬의 입장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뜻밖의 행운으로 감독과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한국의 영화감독을 우연히 만난 것, 자신의 영화를 보러 와줬다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최 감독의 영화 두 편을 꼭 챙겨 보겠노라 약속했다.

5. 관객과의 소중한 만남

한국에 컬트무비 마니아,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열혈팬들이 많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8∼9일 진행된 특별상영회에는 시작 전부터 감독의 사인을 받으려는 관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관객들은 긴 줄을 서서 감독과의 만남을 기다렸고, 감독 역시 한국 관객들의 반응에 놀라움과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흔쾌히 한 명 한 명의 팬들과 사진을 촬영하는 배려를 보였다.

상영회가 끝난 후 바로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감독이 무대로 등장한 순간, 꽉찬 관객석에서는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참석 관객 대부분이 감독 작품에 대해 전문가 버금가는 해석력을 갖춘 열혈 마니아이기에 진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감독도 질문에 성심 성의껏 답했다. 감독 특유의 ‘거침 없이’ 솔직한 발언으로 상영관은 종종 관객들의 폭소로 가득 채워졌다.

특별한 감독과, 그 감독만큼 특별한 팬들의 만남은 두 차례로 마무리 됐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이 한국에서의 최고 기억이며, 평생 마음에 남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with cinem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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