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盲’ 대학생들

한번 더 이 얘길 해야겠다. 도내 어느 고등학교 축구팀이 수년 전 일본에서 한 고등학교 축구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경기는 3-0 스코어로 완승했다. 두 나라 선수들은 서로 유니폼을 벗어 바꿔입으면서 우의를 다졌다. 여기까진 좋았다.

낭패가 된 사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 학생들은 서로 편지를 교환하자면서 저마다 자신의 주소를 한문으로 쓴 쪽지를 건네며 우리 선수들더러 주소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당황해 했다. 집 주소를 한문으로 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코치에게 우르르 몰려가 써달라고 했으나 한문을 모르긴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이긴 좋은 기분은 간곳없고 그만 창피스럽게 되고 말았다.

뭐랄까, 우린 우리의 글이 있어 한문을 안배우기 때문에 한문 주소를 못쓴다고 해서 창피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의 글, 순수한 우리의 말을 되도록이면 많이 써야 하는 건 틀림이 없지만 엄연한 한자문화권인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우리 학생들은 축구 경기에서는 완승했으나 교육 효과에서는 완패한 것이다.

‘한자로 자기 이름도 못쓰는 대학생 많다’는 일전의 보도가 한동안 잊었던 한·일고교 축구의 그같은 숨은 일화를 생각케 했다. 어느 대학교에서 새내기 대학생 384명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20%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쓰고, 아버지 이름은 77%, 어머니 이름은 83%가 쓸줄 모르는 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다른 일상용어의 한자 수준은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할 것이다.

도대체가 멀쩡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토록 ‘한맹’(漢盲)으로 만드는 정부의 교육방침이 뭣인지를 알고 싶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한문교육은 팽개치고 영어교육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자발음은 또 남발한다. 정부 발표문부터 외래어 아닌 영어 투성이다 보니, 자치단체도 그렇고, 사회풍조 또한 이를 무슨 멋으로 아는지 하다못해 미장원 간판도 영자발음 투성이다.

뭔가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됐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성인’이란 말도 한문으로 ‘成人, 成仁, 成因, 聖人’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한자를 모르고는 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학문을 하려면 더 한다. 적어도 기본 한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책무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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