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은 무상하다. 인심은 무상해도 대자연의 봄은 역시 강산을 찾아든다. 수원 화성행궁에도 강산의 봄이 깃들었다. 2007년 화성행궁 상설 한마당 개막공연이 있었던 게 지난 24일 일요일이다. 관광 시즌을 맞이하여 수원예총 등 주관으로 올 상설 행사의 오픈이 화성홍보관 개관과 함께 있었다.
수원은 정조대왕의 도시다. 조선조 유일의 행정도시며 근대적 개혁의 의지가 담겼던 도시다. 화성은 그같은 요충적 개념이 담긴 성곽이다. 200여년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어도 수원은 정조의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도시다. 화성 성곽에 낀 이끼엔 대왕의 정신이 서려 숨쉰다.
불세출의 걸출한 계몽군주, 정조대왕 그리고 대왕에게 그러한 품성을 배양시킨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자애는 수원의 모태다. 수원시가 선발한 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의제에서도 그같은 ‘온고지신’의 옛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한다. 지난 일요일이 그러했다. 정조와 혜경궁 마마가 참석한 가운데 가진 상설 한마당 개막공연 또한 새로운 소회를 일깨웠다. 정조의 친위대든 장용영의 수위의식, 무예24기, 궁중무용 등 재현은 ‘온고지신’의 교훈과 더불어 올 관광시즌에서 외국인을 비롯한 관광객들에게 매주 주말마다 보기드문 명품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이날 개관된 화성홍보관은 아흔아홉 칸의 행궁에 걸맞는 조선식 건물의 외양이 아닌 현대식이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시설 내용은 훌륭하다. 행궁의 연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갖가지 고증적 전시물이 돋보인다. 영화관 상영물 중 화성의 공심돈서 쏘아대는 철환이 마치 관객을 겨냥하며 달려오듯이 하는 입체감은 현장감을 더했다.
행궁을 포함한 화성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그같은 형태적 가치보다 더한 것이 앞서 밝힌 정조대왕의 개혁 정신이다. 대왕은 실사구시의 실학을 꽃피웠다. 북학파를 통한 서구 문명의 도입을 권장하였다. 이 때가 18세기 말엽이다.
청나라 멸망을 가져온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근대화가 본격화한 것이 1911년이다. 일본의 에도 막부가 붕괴되면서 근대 국가를 이룩한 것이 19세기 후반의 명치유신이다. 정조대왕의 근대화 이상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앞선다. 대왕은 1800년 재위 23년만에 승하하였다. 당시의 보령이 연부역강한 마흔여덟이었다. 그 무렵 실학의 개혁은 수구파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 만약 대왕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이 없었던들 조선의 개화는 중국이나 일본을 앞질러 동북아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설은 부질없다. 가설은 부질 없지만 역사의 교훈은 얻을 수 있다.
화성성역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비 지원 등을 위한 제도적 법률 장치는 필연적이다. 화성홍보관 개관식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김용서 수원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식장에서 홍기헌 수원시의회 의장, 남경필 국회의원은 김 지사가 일찍이 운을 띄운바가 있는 도비 보조 100억원을 거듭 다짐하자 김문수 도지사는 “헛허… 참!”하면서 그 역시 긍정적으로 다짐했다. 도비 지원은 국비를 끌어오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경기도가 앞장서는 것이다.
화성은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오는 2020년까지를 목표 연도로 추진하는 성역화복원사업은 민자를 포함, 약 2조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 되지만 후대를 위해 이 세대가 해야할 시대적 소명이다. 바로 엊그제다. 이의 관련 자료를 얻기위해 수원시화성사업소엘 들렀다. 종이컵으로 대접받은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한 채 복사기로 복사된 일부의 자료를 받아들고 나선 그 시각에도 대부분의 직원이 자리잡은 1,2층 사무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이 때가 이미 초저녁으로 접어든 오후 7시30분께다.
화성행궁 앞 마당 6천755평에는 명당수와 신풍교 복원사업이며 주변 경관 조경사업이 한창이다. 기존의 많은 건물이 철거된 가운데 유독 남아있는 수원우체국 건물도 오는 연말까지 시내 천천동에 신축되는 새 건물로 이전하면 마저 철거된다. 광장 조성사업과 함께 추진되는 종로 거리의 종루 등 복원은 또 하나의 명품으로 등장할 것이다.
화성행궁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로 명성을 떨친 ‘대장금’, ‘왕의 남자’ 등 촬영 장소였으나 이만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다. 인심은 무상해도 시대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 지향의 개혁을 요구한다. 정조대왕의 생생한 개혁 정신의 요람인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반추되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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