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슈 바샤리 피아노 리사이틀

노장의 육신은 쇠하였으나 그의 음악은 살아있었다.

올해 74세인 피아니스트 타마슈 바샤리의 첫 내한 공연이 있던 5일 저녁.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앙코르곡 연주를 마친 그의 열정에 감격한 청중은 일제히 기립해 노(老)거장의 음악에 경의를 표했다.

바샤리는 특히 국내 음악팬들에게 쇼팽의 음반으로 기억되고 있는 만큼, 쇼팽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이번 음악회는 일찍부터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이번 리사이틀에서 빛난 것은 쇼팽이 아니라 앙코르로 연주한 리스트와 베토벤이었다.

음악회의 전반부가 끝났을 때만 해도 청중의 의견은 찬반양론으로 갈렸다. 한편에서는 음악 구조를 꿰뚫어보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노련함에 감탄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쇠함에서 비롯된 힘의 부족과 기량의 쇠퇴에 실망을 표시했다.

세 곡의 마주르카에서 그가 보여준 감각적인 리듬감과 녹턴에서 드러낸 내밀한 감정표현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자적인 경지를 보여주었으나, 청중을 압도하기에 다소 부족한 다이내믹과 일부 실수는 음악 마니아들의 예민한 귀를 피해가지 못했다.

쇼팽의 전주곡 전곡이 연주된 음악회의 제2부에서 실망감은 더욱 짙어졌다. '빗방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제15번에서조차 음악적 영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어지는 16번의 기교적인 악구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쇼팽의 전주곡을 끝으로 이번 음악회가 마무리되었다면 바샤리의 진면목을 결코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 게임은 앙코르에서 시작됐고, 제2부에서 연주된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앙코르로 구성된 제3부 무대의 '전주곡'이었음이 드러났다.

첫 번째 앙코르로 연주된 드뷔시의 '달빛'에 이어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앙코르가 연주되면서 음악회 분위기는 급격히 달아올랐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리골레토 판타지'를 두 번째 앙코르로 연주한 바샤리는 마치 자신이 오페라 가수가 된 듯 베르디의 멜로디를 여유롭게 노래하면서도 고도로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악구들을 화려하게 펼쳐놓았다. '환상곡'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자유분방한 템포와 유려한 흐름은 일품이었다.

그는 이 놀라운 앙코르에 이어 곧바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연주하며 압도적인 힘과 광기로 청중을 휘어잡았고,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전 악장을 환상곡 풍으로 연주하여 앙코르 무대를 충실하게 마무리했다.

본 프로그램인 쇼팽의 작품보다는 오히려 앙코르에 집중된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바샤리는 자신이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음악의 제너럴리스트임을 암묵적으로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작품에 따라 음악적 표현을 변화시키며 자신이 어떤 음악가로서 정의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듯, 바샤리의 음악도 변화를 거듭한다. 다소 노쇠함의 기미가 있을지라도 그의 음악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의 음악이 순간순간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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