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예술이 된다는 것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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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중부, 로마의 북서부에 위치한 ‘피렌체’는 불어로 플로랑스(Florence)라 불리는 꽃의 도시이자 르네상스의 발상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오날리티, 마키아벨리 등 불멸의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예술의 메카다. 그 당시 베네치아인들의 명성은 화가로서 끝났지만 피렌체인들은 화가뿐만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시인이나 과학자 등으로서 그 영역을 확장시킨 천재들이었다. 이들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예술창작·연구·저작활동을 펼쳤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주역은 그 시대의 문화 CEO 조반니 메디치(Giovan ni de Medici:1360~1429)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는 피렌체에서 소규모 모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르네상스 최대의 금융제국, 메디치 가문을 일궈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일군 상업자본은 정치권력으로 이어졌고 말년에 문화예술 지원과 자선사업 등에 매달렸다. 이 가문은 15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300여년 동안 유럽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면서 뛰어난 문화적 식견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이 가문의 최고 군주, 로랜조 데 메디치는 ‘위대한자 로렌조’로 불릴만큼 메세나(예술·문화에 대한 후원)에 정열을 기울여 피렌체를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즉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부호와 귀족, 로마 교황의 보호 하에 문화가 크게 발전했는데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도보로 2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피렌체에 두오모 성당을 비롯한 성당만해도 12채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 미켈란젤로의 조각, 조토와 마사초, 라파엘로의 그림들….

명성에 비해 작고 검소한 메디치궁에는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함께 모여 예술과 철학, 그리고 문학을 논했다. 이 모임은 철학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신 플라톤주의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도 소년시절부터 이곳에 살았고 갈릴레리 갈릴레오도 후원받았다.

피렌체대학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요한 아르기로포울로스, 테오도루스 가차, 데메트리우스, 칼콘딜라스 등의 학자들을 교수로 채용했는데 이중에서 칼콘딜라스는 데메트리우스, 크레텐시스와 함께 피렌체에서 최초로 호메로스의 인쇄본을 발행했다. 1488년에는 옥스퍼드에서 최초의 그리스어 교수가 되는 윌리엄 그로킨이 대학으로 왔고 1489년에는 윌리엄 래티머가 그로킨과 리너커를 도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교황만 3명을 배출한 메디치가의 자손이 끊어졌을 때 피렌체는 자선과 기부를 기억하며 비탄에 잠겼다고 한다. 생활이 예술이 된 가문의 힘을 역사는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관리의 핵심은 삶의 가치관, 즉 철학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 신념은 사고 및 일상생활의 모든 결정과 선택에 초석이 되는 내면의 힘이다. 메디치 가문의 생활철학이자, 생존 방식이며 정치의 수단인 메세나는 오늘날 문화마케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장인 롤프 얀센(Rolf Jensen)은 “정보사회 다음은 꿈의 사회이며 이미 시작됐다. 꿈의 사회에선 상품을 사고 파는 게 아니라 상품에 든 꿈을 사고 팔게 된다. 꿈은 이야기이고 문화이다”라고 했다. 유러피안 드림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산업생산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들은 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상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충실한 철학이 담긴 진지한 문화만이 신뢰와 존경,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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