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어떤 어법을 구사했는지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귀혜씨의 박사논문을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스스로 신뢰받기 위한 말투를 주로 썼다. ‘사심없는 대통령’등 개인 인품을 강조했다. 특히 위기상황시 추상적 단어를 사용해 이야기하는 ‘초월’ 전략이 두드러졌다. ‘인품호소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과 일체감을 표시하기 위해 감정표현을 자주 반복한 유형으로 분류됐다. “절망감을 생각하며 제 자신을 매질하고 있습니다”처럼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강조하는 표현도 많이 사용했다. ‘죄송, 사죄, 불찰, 고개를 들 수 없음, 부덕의 결과’ 등 매우 다양하게 사과 표현을 한 대통령으로 꼽혔다. ‘감정호소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국 사례를 제시하거나 해외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여왕, 앨빈 토플러 박사’ 등 권위있는 해외 언론 및 학자 등의 발언을 인용해 설득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해외사례 제시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불안 등 대통령 개인과 관련된 위기상황시 사과를 거듭하는 ‘굴욕감수’ 전략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기 1년을 남긴 시점인 지난해 2월까지의 발언을 대상으로 분석했다는데 18개 메시지 중 16개(88.9%)가 모두 사과나, 책임을 용인하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지위를 강조하지 않으며, 대통령 1인칭 주어를 생략해서 주로 발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 논거를 들 때 국민과 자신에 대한 일화 등 실제 이야기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공격에 맞서 직접 ‘부인’하고 ‘공격’하는 전략이 두드러졌다. 노 대통령 이전 한국 대통령의 정치적 방어 메시지엔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전략이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고은 시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일단 대통령의 언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노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의 언어에는 위선적 품위나 품격이 필요하다. 이런 명분을 벗고 적나라한 언어를 하는 것은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청와대나 노 대통령의 응답이 아직 없다. ‘굴욕감수형’이 맞나 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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