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더위를 예측이라도 한 듯 지난 5월부터 극장가엔 공포영화나 스릴러물들이 즐비하다.
‘공포의 명가’가 내놓은 두 작품 나란히 개봉
‘쏘우’ 시리즈, ‘큐브’ 등 ‘신선한’ 반전 스릴러를 선보인 바 있는 ‘라이언스 게이트’의 영화 두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WWE(세계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한 ‘씨노이블(See no evil)’이 28일, 영국 닐 마샬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보고 단박에 채택했다는 ‘디센트’가 7월5일 관객을 만난다.
두 영화 모두 ‘공포영화의 명가’ 라이언스 게이트의 작품이라고 내세우지만, 완성도와 신선도 면에서 궤를 달리한다. 한 영화는 라이언스 게이트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할 만큼 품격 있는 공포를 새롭게 선사하고, 다른 영화는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유혈폭력으로 완전무장했지만 그마저도 예측가능하고 어디서 본 듯하다.
영국산 품격 있는 공포 ‘디센트’
먼저 영국산 공포 ‘디센트’. 2002년 ‘도그 솔저스’로 호평 받았던 닐 마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2005년 유럽에서는 호평과 흥행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고, 2006년 미국에선 평단의 호평은 잡고 흥행은 놓쳤다.
영화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사라(슈어나 맥도널드 분)를 위해 동굴탐험에 나선 6인의 친구가 괴생물체를 만나 벌이는 사투를 따라간다. 동굴벽이 무너지면서 감금되고, 유명 관광객용 동굴인 줄 알았던 곳이 지도에도 없는 원시동굴임을 알게 되고, 그도 모자라 인간을 먹이 삼아 즐기는 괴물생체와 맞닥뜨리면서 여섯 명의 여자는 혼돈과 분열을 겪는다.
닐 마샬 감독은 한계 상황에 다다른 인간의 공포와 절망감을 간결하고 대담하게 보여준다. 뒤는 막혀 있고, 앞으로 가면 괴물이 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인간 같기도 하고 박쥐 같기도 한 ‘생전 처음 본’ 괴생물체의 습성을 알 수도 없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먹힌다. 상황은 너무나 명료하다.
‘오랜만에’ 괴물 대 여전사의 사투
마샬 감독은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공유시킨다.
사라의 몸이 좁은 통로에 끼어 오도가도 못할 때, 보는 사람의 심장도 터질 듯 갑갑하다. 시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두운 동굴 속, 사라는 캠코더의 액정 화면을 눈으로 해서 길을 찾아간다. 감독은 캠코더 하나로 관객을 자기가 데려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가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서서히 그러나 최고조로 긴장도를 높여간다.
공포와 절망감, 그를 씻어내기 위한 폭력성 분출. 감독 그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제멋대로 연주한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여자들은 아마돈의 여전사로 변신한다. 괴생물체가 인간의 공포 대상인지, 죽기살기로 달겨드는 인간이 괴생물체의 공간에 끼어든 침입자인지 헷갈리 정도다.
동굴탐험을 제안한 리더격 주노(나탈리 잭슨 멘도자)의 파워풀한 액션, ‘에이리언’의 시고니 위버를 연상시키는 사라의 강인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에이리언4’ 이후 9년, 오랜만에 괴물과 여전사의 더럽고 잔인한 사투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반전이 주는 ‘묘한’ 여운
감금을 주된 모티브로 하되, 주로 지하실에 가두는 미국산 공포와 달리 동굴로 장소를 옮긴 ‘디센트’.
계속 동굴만 등장하는 어둡고 단조로운 화면이 흠이긴 하지만, 주인공들과 함께 괴물의 추격을 받다가 돌아서서 괴물을 죽이다가 혼비백산하다 보면 100분의 러닝 타임은 지루하지 않다.
사라와 주노 사이에 감춰진 비밀이 주는 재미와 극적 긴장감이 있고, ‘이제 모든 게 끝났나’ 싶을 때 튀어나오는 반전이 흥미를 돋운다. 우정 회복을 위해 나섰던 여행이 배신으로 얼룩지는 모습, 반전이 담긴 결말을 보노라면 공포영화답지 않은 주제의식도 느껴진다.
악동 레슬러 케인, 스크린 데뷔작 ‘씨노이블’
WWE 레슬링 계의 악동 케인이 그 악명, 그 살벌한 습성을 그대로 살려 스크린에 진출했다. ‘2007 최강 호러’라는 홍보 문구를 내건 ‘씨노이블’이 그것.
영화의 설정은 간단하다. 화재로 폐허가 된 블렉웰 호텔에 비행 10대 청소년 8명이 초대된다. 3일 간 청소하면 수감 한 달을 감형해 준다는 감언이설에 밀려서 말이다. 하지만 호텔엔 갈고리와 쇠사슬로 인간 사냥을 즐기는 이가 살고 있었으니 바로 제이콥(케인 분)이다.
괴물보다도 흉측한 외모와 괴력을 소유한 제이콥과의 한 판. 아무리 범죄자들이라고 하지만 승산이 있을까?
케인의 악행 ‘그대로’ 잔인한 호러
케인의 연기 도전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2m가 넘는 큰 키와 150㎏의 육중한 몸, 괴기스럽게 생긴 얼굴 덕(?)에 분장을 크게 하지 않아도 살인마 제이콥으로의 변신이 쉬웠다더니 연기 또한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워 보인다.
장내 아나운서의 몸에 불을 지르고, 상대를 숨막혀 죽기 직전까지 몰아대던 그의 악행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듯 영화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여기에 감독까지 한 수 거든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힙합 가수 아이스 큐브 등의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그레고리 다크 감독. 빠른 컷 넘김을 특징으로 하는 뮤직비디오 감독답게 엄청난 속도감으로 살벌한 폭력을 양산하고, 카메라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훑어낸다.
식상한 공포,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감’ 폭력
하지만 쏟아내는 피와 뽑아내는 눈의 양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새로운 ‘무엇’이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희희낙락하다가 뒷통수를 맞는 주인공들, 괴력의 살인마 뒤에 서있는 조종자의 존재, 악마가 된 슬픈 사연. 호러 영화의 고전 문법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그친 이야기 전개는 관객에게 ‘높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피 튀기는 WWE 레슬링을 즐기는 사람들, 케인의 팬들은 ‘씨노이블’을 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지러울 만큼 빠른 속력의 폭력, 아무리 잔혹한 장면이라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카메라는 노약자와 임산부에겐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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