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개인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노무현은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노무현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다. 국가 안위의 대처에 판단을 내릴 최고, 유일의 권한을 지닌 직위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출퇴근시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국가 안위의 구체성이나 개연성은 24시간 상존하기 때문이다. 왕권시대에 임금의 잠자리를 장지문 하날 가운데 두고 지밀상궁이 밤새워 살핀 것은 최고, 유일의 통치권자의 건강, 유고에 대비키 위해서다. 최고, 유일의 통치권자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민권시대라고 다르지 않다. 비록 지밀상궁은 있을 수 없어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 최대 관심사가 유고를 우려하는 대통령의 건강이다. 이에 대통령과 개인이 구분될 수 없다.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사생활은 없다. 대통령에겐 개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사생활도 대통령이 되고나면 대통령의 것이 된다. 예컨대 대통령의 성장과정이 미친 성격적 영향은 대통령의 직무 수행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신고한 재산 내역에 명륜동 집을 판 2억6천700만원을 빠뜨려 일으킨 논란은 대통령직이 요구하는 도덕성 문제였다. 그 도덕성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이 정권의 실세인 안희정과의 관계가 생수 동업자까지 소급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권력 구조의 유착성 때문이다. 생수 동업의 사생활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이 말썽이 된 적이 있다. 2003년 9월12일이다. 이날 저녁 그는 ‘인당수 사랑가’를 구경했다. 태풍 ‘매미’가 상륙했던 날이다. ‘매미’가 할퀸 피해는 참담했다. 13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수 조원 상당의 재산이 망가졌다. 대통령은 들끓는 비판 여론 속에 10여일이 지나 청와대 브리핑에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윤리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 이처럼 사생활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국가 안위의 대처에 판단을 내릴 최고, 유일의 직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가족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가족 문젠 대통령 개인의 관계이지만, 대통령 노무현과 개인 노무현이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청와대 밖에서 생활하는 그의 아들 딸들 가족이 관할 경찰의 경비를 받게된 관련법의 제정 취의가 이에 있다. 개인 노무현이 존재한다면 있을 수 없지만, 개인 노무현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같은 경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면서 황당한 말을 했다. “개인 자격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나라에선 그렇게 안 봤다. 총리로서의 개인 자격은 곧 총리 자격인 걸로 보았다. 그 역시 일본 최고, 유일의 실권자 직위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의 아베 일본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 노무현 말대로라면 총리 개인 자격의 참배에 대한 비판이 불가하다. 그러나 그같은 참배가 앞으로도 계속 비판이 가능한 것은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 틀렸기 때문인 것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을 최전성기로 이끌었던 영명한 군주다. 그의 재위 64년은 대내적으로는 자유주의적 개혁,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의 시장 획득으로 유니언 잭 깃발이 세계에서 지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알버트는 남편으로 고명한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여왕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아내에게 좀 화가 났던 날 밤 여왕이 안에서 잠근 침실문을 노크했다. 아무 응답이 없자 시종이 “폐하이십니다”라고 했으나 묵묵부답이어서 이번엔 직접 “알버트! 당신의 아내예요”하자 문이 열렸다. “부인! 그래도 당신은 이 순간에도 대영제국의 여왕이요” 한 것은 미소로 맞이하는 남편 알버트의 말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토론을 좋아한다. 토론은 평등한 수평적 개념이다. 내가 말을 하면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의 토론이란 건 계급의식을 내세운 수직적 개념이다. 자기 말만 강요한다. 남의 말엔 건성이다. ‘평검사원의 토론’이 그랬고 ‘공무원과의 토론’이란 것이 그랬고, 근래 ‘언론인과의 토론’도 역시 그랬다. 엊그제 청와대서 가진 ‘대학 총장들과의 토론’도 그러했다. 총장들은 ‘사회적 강자·약자’ 등 여전히 이분법적 그의 인생관을 들어야 했고, 내신비율 강화를 강요받는 훈시를 경청해야만 했다. 대통령 계급장을 떼는 척 하면서도 대통령직 권세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곤하는 그가 개인 노무현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냈다.
개인 노무현이 대통령 노무현의 선거 개입을 위해 낸 개인 자격이란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노무현’은 있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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