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천은 청계천과 비유된다. 산으로 말하면 팔달산은 남산과 비유할 수 있다. 수원천도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무허가 건물이 난립했었다. 하천 바닥에 높은 말뚝을 박아 달아낸 판자집이 즐비했다. 수상가옥이 아닌 하상가옥인 것이다.
6·25 전쟁통에 생긴 수원천 판자집은 1960년대 말까지도 골칫거리였다. 수원시에서 철거하려고 하면 주민들의 데모 바람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수원 출신의 L 국회의원 역시 표밭이어서 주민들을 두둔했다. 그런데 한 번은 큰 물이 져 주민들을 대피시킨 틈을 타 모조리 철거했다. 수원시는 이에 L 의원의 사전 양해를 얻었다. 나중에 주민들의 항의 현장에 나타난 L 의원은 시장에게 호통을 쳤으나 그것은 쇼였다.
그렇게 해서 하상 판자집이 없어지고 나니까 문제가 또 생겼다. 일부 철거민들이 이번엔 수원천 길가에 육상 판자집을 지은 것이다. 이를 또 철거하면서 생긴 묘안이 이동 판자집이다. 즉 땅바닥에 고정시킨 것은 집이지만 바퀴를 달아 이동하는 판자집은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이동 판자집은 몇해 전까지도 유물처럼 구운동에 한 채가 있었다.
‘문화·휴식이 흐르는 수원천 만들자’는 제하의 수원영복여고생들 토론회 기사(본보 13일자)를 보자니까 수원천에 한 때 숨은 그같은 어두운 과거사가 생각났다. ‘수원천 네트워크 청소년 수원천 지킴이’ 토론회는 수원천 보존 활용방안이 내용이다. 징검다리, 열차개통, 조명장치 등 만발한 풋풋한 아이디어가 생동감이 넘친다.
수원천은 한참동안 오염이 찌들어 회생이 절망적이었다. 일부를 복개했던 것은 그같은 절망적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우·오수관 분리 등 꾸준한 환경복원에 힘 입어 다행히 생태계가 살아났다.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다만 청계천과 다른 것은 청계천처럼 한강 물을 끌어댈 수 있는 물을 수원천은 달리 댈 수 없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날씨가 가물면 물이 말라 건천이 되곤하는 게 안타깝다. 그렇긴 해도 수원천은 수원의 전래 정서가 실린 대표적 자연환경이다. 종로나 남문 일원엔 포장되기 이전의 옛날에 팔달산서 흐른 맑은 물이 수원천으로 흘러들었던 개울이 길밑에 지금도 있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황구지천으로 유입된다. 많은 하천이 여러 시·군을 지나면서 흐르는데 비해 수원천은 수원 시내에서만 흐른다. 수원 시민이 오염시키지 않으면 깨끗하다. 수원천은 수원 시민의 양식을 나타내는 하천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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