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마스크’ 같은 도시괴담이 무서운 이유 / 나고야 살인사건
<나고야 살인사건> 의 원제는‘입 찢어진 여자’, 즉 도시괴담으로 전해지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마스크를 쓴 여자가 찢어진 입을 보이며‘나 이뻐’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아 답을 제대로 못 하면 가위로 자신과 똑같이 입을 찢어버린다는 괴이한 이야기. 70년대말 일본에서 시작된 ‘입 찢어진 여자’ 괴담은 한국으로도 건너와 ‘빨간 마스크’ 등으로 변형되어 떠돌았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고야살인사건>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귀신이야기들은 대체로 친구의 친구가 보았다, 아는 친척이 경험한 이야기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괴담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으니까 뭔가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설사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본 사람에게 그 경험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사람이 그 순간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까. 과거에는 그런 경험적인 사실들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면서 변형되고,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해 민담이나 설화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구전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개개의 작은 사건들이 삽시간에 ‘사실’로 전해진다. 그렇게 ‘사실’이라는 포장을 쓰고 퍼져나가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사건들을 ‘도시 괴담’(Urban Legend)이라고 부른다.
<캠퍼스레전드> 란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의 원제가 바로 Urban Legend다. 근대이전까지 마을의 신기한 체험이나 귀신이야기는 제한적 일 수밖에 없었다. 근방의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외부의 장사꾼이나 유랑자가 마을에 들러 전해주는 신기한 이야기들 이마을 사람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도시는 익명성이다.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떠도는 것이 도시 괴담이다. 홍콩할매 귀신이나 빨간 마스크 같은 귀신 이야기도 있고 톡톡과 콜라를 같이 먹으면 폭발한다는 기묘한 이야기도 있다. 캠퍼스레전드>
도시 괴담만을 모아 만든 일본 공포영화 <시부야괴담> 에는 어느 역의특정 사물함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거나 모 백화점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거나, 자동차 아래에서 손이 나와 발목을 잡았다거나 하는 괴담이 줄지어 나온다. 이런 도시괴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본의 도시괴담> (다른세상)이나 <도시괴담> (딱정벌레)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도시괴담> 일본의> 시부야괴담>
일본의 갖가지 도시괴담을 모아놓은 책 <괴담신미미부쿠로> 를 만화로 각색한 <실화괴담신미미> 에도 자살한 여자의 방에서 들리는 발소리, 폐허가 된 병원에 들어갔다가 귀신을 데리고 나온 남자 등 도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기괴한 사건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링> 같은 공포영화에서 공포의 근원이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과 달리, <실화괴담신미미> 에는 ‘이유’나 ‘근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뭔가 불가사의한 것을 체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버린다. 왜 나타났는지, 그 불가사의한 현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거기에는 원인도 결과도 명확하게 없다. 오로지 현상만이 있는 것이다. 실화괴담신미미> 링> 실화괴담신미미> 괴담신미미부쿠로>
그런데 그게 더 무섭다. <드라큘라> 에서 뱀파이어의 공포에 떨던 이들은 그 존재가 무엇인지를 안 다음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연쇄살인마가 두려운 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귀신도 지옥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공포의 존재다. 도시 괴담이 나오는 것 역시 그런 미지의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현실적인 사건이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포로, 괴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드라큘라>
<나고야 살인사건> 의 이야기는 입 찢어진 여자가 27년 만에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들이 입 찢어진 여자에게 납치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생기고, 초등학교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하교를 하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인 야마시타 교코는 미카를 집까지 데려다주다가 입 찢어진 여자를 만나 미카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 만다. 한편 교코는 동료 교사인 마츠자키 노보루가 납치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괴이한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입 찢어진 여자가 노리는 것은 대체로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그리고 교코와 노보루는 각각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다. 교코는 1년 전에 이혼을 했고, 아이는 교코를 거부하고 남편을 따라갔다. 교코가 아이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이를 때렸다가, 금방 후회하고 사과를 한다. 노보루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다. 폭력의 후유증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아이들이 입 찢어진 여자의 ‘폭력’에 희생되지 않게 하기위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입 찢어진 여자가 노보루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고야>
입 찢어진 여자의 폭행을 은밀하게 벌어지는 가정 내 폭행과 연결을 지으려 한 점은 중요하다. 가정내 폭력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아이를 때린다. 때리고 나서는 금방 후회하고 사과를 하면서 또다시 때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말은 뻔해진다. 부모를 미워하게 되거나, 맞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이 맞아야 할 이유가 있다며 자학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 내 폭행은 부모와 아이 모두가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부모가 폭행을 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고야 살인사건> 은 노보루의 어머니가 입이 찢어지게 된 과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왜 그런 흉악한 괴물 혹은 귀신으로 변해야만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노보루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폭행했던 것처럼, 대상을 바꿔 다른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만 보여준다. 그녀가 변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었다면,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도시괴담에서 출발한 <나고야 살인사건> 을 그럴듯한 공포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고야 살인사건> 은 그저 입 찢어진 여자의 괴이한 능력과 폭력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탓에 <나고야 살인사건> 은 그저 하나의 괴담에 머무르고 있다. 나고야> 나고야> 나고야>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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