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이 종 성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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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학우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호칭문제에서 고민했던 적이 있다. 사위들간에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통을 따르든, 현대적으로 하든 상관 없이 ‘나이에 의해 정해진다’였다.

문제의 발단은 처가에서의 서열과 연관 등이었다. 손윗 동서가 손아래 동서보다 나이가 적을 경우 손쉽게 서로가 존대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남성들의 세계에서 서열에 대한 보이지 않는 갈등은 유치하지만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조심스런 탐색전에서 시작해 때에 따라서는 한바탕 소란까지도 가능하고 서로 입을 굳게 닫아버려 모처럼 모인 처가에서의 즐거운(?) 자리가 어색하고 피곤한 자리로 변하기까지 한다.

이는 근대화과정에서 교통의 발달과 직업의 변화 등으로 가족관계가 바뀌고 가족에 대한 인식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기존 문화와의 갈등과 그에 따른 모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울타리가 남성과 시댁에서 점점 처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돼 예전 한두차례에 불과하던 사위들과의 얼굴을 맞댈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위는 처가에 가면 남이고 백년객, 즉 귀한 손님일 뿐이다. 따라서 처가의 서열과는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이는 호칭에도 그대로 적용돼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처남으로 부른다. 손위 또는 손아래 처남으로 부르지만 형님이나 아우의 의미가 아니라 아내를 중심으로 위와 아래의 뜻만을 가질 뿐이다. 아내의 자매에게는 처형이나 처제처럼 형과 아우의 뜻을 지닌 형과 제가 들어있는 듯 보이지만 이 또한 아내가 중심이 돼 위와 아래를 지칭할 따름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사위와 사위의 관계는 더더욱 남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남남이 만나 서로간 서열을 따지는 방식은 나이 이외에는 없다.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 ‘형’이 되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접근해도 문제는 다르지 않다. 나이 어린 삼촌, 아저씨, 고모, 이모 등은 가능하다.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나이 어린 선배는 있을 수 있지만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조직폭력배를 제외하고는 없다. 이외에도 사회에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호칭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상호간 친밀해지고 친근감을 표시하려면 궁극적으로 나이에 따라 형과 아우를 구분한다.

조폭이 아니더라도 ‘형님’이 나이가 어린 경우는 며느리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아랫 동서는 윗 동서에게 예외 없이 형님으로 부른다. 이는 ‘처형’처럼 남편을 중심으로 윗사람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의 ‘형님’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결혼 전까지 여성들은 ‘형’이라는 단어를 자신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여성의 인식에 존재하지 않던 낯선 ‘형’의 개념은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할 뿐 의미적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때와 같은 단순한 호칭으로 수용함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적인 수단이 말이고 굳이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의 호명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호칭은 나와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나이가 어려도 서열에 따라 ‘손윗 동서’로 지칭하는 게 당연하듯, ‘형’의 개념이 바뀌지 않는 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여전히 ‘형’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곁에 있는 비슷한 문화권인 서남아시아인들의 호칭이 궁금해진다.

이 종 성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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