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사회의 기초, 통계

박진우 수원대 통계정보학과 교수·통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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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목전에 둔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주자들이 TV에 나와 토론하는 모습이 부쩍 잦아졌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요즘 대선주자들이 국정운영을 위한 주요 통계수치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 실업률, 일자리 숫자, 국민기초연금 수령자 수, 교육예산 비율 등 다양한 수치들을 거침없이 인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민주화가 되면서 여러 사회집단 간의 이해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고, 국제화로 인해 FTA 등 국가 간 중요한 협상이 잦아지게 되면서, 통계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해 조정이나 협상을 위한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에 국가 지도자들이 이처럼 관심을 갖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그 많은 통계들은 다 믿을 만한 것일까?

“재정수지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통계인데 사전에 오류를 예방하지 못했다. 국민께 불신(不信)을 드린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지난 달 기획예산처 장관이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의 오류로 ‘엉터리 재정통계’ 물의를 빚은 지 13일 만에 사과한 내용이다. 국가 통계에 오류가 생기면 이것은 곧바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 초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장관이 직접 나와 통계의 오류에 대해 이같이 사과를 하게 된 것이다.

“고용이 4천명 감소했다(9월7일 예측치)”→“아니다. 8만9천명 증가했더라(10월5일 수정치).” 미국 노동부는 10월5일(현지시간) 고용통계를 발표하면서 한 달 전에 발표했던 ‘8월 비농업 부문 고용 증감’을 이같이 바로잡아 다시 내놨다. 미국의 고용통계는 경제통계 중 세계 주식가격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달 7일 ‘고용 4천명 감소’라는 통계가 발표되자 이 지표를 보고 투자자들은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만 시가총액 305조4천여억원(3천320억 달러)을 증발시켰다고 한다. 한국 증시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루 동안 24조869여억 원을 사라지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통계정보의 영향력이 이처럼 막대한 까닭에 정확한 통계 작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유능한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환자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먼저 각종 검사를 받게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다. 만일 검사 결과에 오류가 많고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어떨까? 비유컨대 통계란 국가나 사회의 건강상태를 나타내주는 검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신뢰할 만한 진단장비가 필요하듯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걸맞는 통계작성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지난 주 경기도 포천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이 개최한 쌀생산량 조사 시연회에 참석하였다. 우리나라의 올해 쌀생산량의 추산을 위해 일선의 통계조사기관이 수행하는 조사의 전 과정을 관련 전문가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쌀생산량 통계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행사라고 생각되었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통계학적 원리에 따라 세심한 관심으로 조사하고 관측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체계적이고 철저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까닭에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나라의 쌀생산량 통계를 믿고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투명하고 개방된 선진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정확한 통계를 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통계를 이현령비현령의 숫자놀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일부 있기에 통계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여러 문제들이 부각되어 실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쌀생산량 통계에서와 같이 신뢰를 높이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은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적잖이 마음에 위안을 받는다. 최근 대선주자들의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듯이 일반 시민들의 통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 또한 깊어진다면 더욱 정확한 통계가 생산될 것이며, 이는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좋은 기초가 될 것이다.

박진우 수원대 통계정보학과 교수·통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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