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거짓말이죠. 이러한 거짓말에도 여러 유형이 있어요. 먼저 남을 속여 자기의 이익을 얻는 사기형 거짓말이 있어요. 또한 내 이익과는 상관없이 그저 악한 마음에 남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려는 거짓말은 악질형 거짓말이라고 해요. 위장형 거짓말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쓰는 거짓말이에요. 책임이나 잘못을 피하기 위해 하는 회피형 거짓말도 있고요. 이러한 거짓말들은 모두 내 이익을 위해 도덕적 양심을 저버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반면 타인의 이익을 위해 혹은 타인을 돕기 위해 하는 거짓말도 있어요. 선의의 거짓말이 그것이죠.
2.선의의 거짓말이 무엇이며, 어떤 사례가 있나요?
선의의 거짓말이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을 말해요. 외국에서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고도 불러요. 그 사례는 많아요. 예를 들어 간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다녀갔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의 크리스마스 흥을 돋우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죠. 또 뚱뚱한 것이 콤플렉스인 친구에게 뚱뚱하지 않다고 말하는 거짓말도 있고요, 시한부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의사가 병세를 미화해 말하는 것도 선의의 거짓말에 속해요.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거짓말로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형 거짓말도 있어요. 그외 타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경우나 타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이지요.
3.그럼 선의의 거짓말도 나쁜가요?
대체로 악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은 옳지 못한 행위이며,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혹은 선한 의도로 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해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선의의 거짓말을 통해 지키려고 한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해요. 선의의 거짓말은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도덕적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대부분이에요. 이를테면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은 비록 거짓말이지만 더 큰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거죠. 하지만 반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도덕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거죠. 다시 말해‘선의의 거짓말을 인정할 수 있나’라는 문제는‘도덕규범에 예외를 인정할 수 있나’라는 문제와 같은 맥락이에요.
4.도덕에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구요?
사람들이 도덕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목적론적 윤리관과 의무론적 윤리관이 그것이죠. 이 중 도덕에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 목적론적 윤리관이에요. 목적론적 윤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3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고 해요.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자주 하는 걸까요? 또 우리가 흔히 말하는‘선의의 거짓말’과 ‘거짓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토론에 앞서 선의의 거짓말이란 무엇이며 어떤 사례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사람들은 행위의 결과가 사람에게 즐거움, 쾌락, 행복을 줄 때 선한 것이며 슬픔, 고통, 불행을 줄 때 악한 것이라고 주장해요. 이들은 사람들이 도덕을 지키는 이유가 인간답게, 양심적으로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죠. 때문에 이들은 도덕 그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 인간답게 사는 목적을 위해 도덕규범을 지켜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도덕은 때에 따라 변하고,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목적론적 윤리관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도가 선하고 결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온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요.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선한 의도로 하는 선의의 거짓말은 허용될 수 있어요. 반면 의무론적 윤리관은 도덕에 어떠한 예외도 허용하지 않죠.
5.의무론적 윤리관은 왜 도덕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나요?
의무론적 윤리관은 도덕이란 선한 행위 그 자체이며 이를 의무적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입장에 따르면 아무리 동기가 선하다고 할지라도 거짓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돼요. 이들은 도덕에 예외를 두면 결국 도덕 자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죠.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바로 칸트예요. 그는 만약 친구를 죽이려는 암살자가 추격해 와서 집안으로 달아나지 않았냐고 물었을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도덕법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요. 결과가 어떠할지는 아무도 미리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의무론적 윤리관을 지닌 사람 중에도 자신에게 극단적인 불이익이 돌아올 경우나 상대방에게 극단적인 불이익이 되는 경우, 약속이 사기나 폭력으로 맺어졌을 경우 등엔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키케로가 대표적인데요, 하지만 그러한 예외조차 가급적 허용되어선 안 되며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당성이 있어야 해요.
/제윤아 유레카논술 상임연구원
명제Ⅰ 선의의 거짓말은 타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해도 된다) 살다보면 때로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을 맞는다. 예를들어 내 친구의 행방을 알아내어 해치려는 적이 있다고 하자. 그런 적에게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친구의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이를 숨기는 거짓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치료에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타인에게 삶의 행복이나 희망을 주거나 좋은 결과를 준다. 정직함이 아무리 올바른 도덕규범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러한 정직함이 상대방에게 오해와 고통을 준다. 그럴때의 정직함은 현명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모두가 행복해지고 좋은 결과를 주는 선의의 거짓말은 허용되어야 한다.
(해선 안 된다) 선의의 거짓말의 결과가 타인에게 좋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친구를 해치려는 적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 친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오히려 거짓말이 들통났을 경우 친구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어떤행위라도 그 결과는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 선한 동기의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또 다른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모르는 일이다. 또한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거짓말은 아무리 선한 의도라고 하더라도 그 환자에게 좋은 결정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것은 환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발장> 에서 신부는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줬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장발장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이후 장발장이 더 큰 것을 훔치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의의 거짓말은 그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 결과가 타인에게 좋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근거 없는 결과를 가정하여 ‘거짓말 하지말라’는 도덕법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장발장>
명제Ⅱ 선의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다!
(해도 된다) 선의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다. 타인이나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기대한 선한 의지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선한 의도가 있는 경우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천안문을 보고 싶어 하는 불치병 소녀에게 어느 대학 운동장을 꾸며 천안문 광장이라고 속여 소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은 소녀는 물론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행복함을 전해줬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거짓말이며 선한 행동이다. 물론 선한 거짓말이 나쁜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선한 거짓말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고해서 선한 거짓말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런 결과를 야기한 다른 요인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설사 거짓말을 했다는 윤리적 문제가 있더라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가장 선한 행위이다.
(해선 안 된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는 선한 행위가 될 수 없다. 어쨌든 그것은 남을 속이는 잘못된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설사 선의의 거짓말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잘못되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돈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결국엔 좋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괜찮다는 의미인가? 게다가 선의의 거짓말이 담고 있는 좋은 의도라는 것이 과연 좋은지 나쁜지를 구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토끼전> 에서 토끼는 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간을 집에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토끼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토끼를 놓쳐 용왕에게 혼이난 거북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나쁜 거짓말일 뿐이다. 토끼전>
첨삭 지도와 논술 / 김진익(수성고 교사)
첨자 지도에 대한 오해
▲첨삭은 과정이지 평가가 아니다.
학생의 글을 첨삭 지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논술 능력을 향상시켜 우리 삶의 여러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이를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따라서 학생의 논술문에 대해 논의를 첨가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빼는 등의 첨삭 지도 활동은 논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논술문을 작성해 나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지 그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이나 교사 모두 첨삭을 해 주면 논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께 첨삭지도한 내용으로 여백을 모두 채운 논술원고지를 받아 들고 오면서 뿌듯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갖 지적과 고칠 것에 대해 서술된 논술첨삭문을 받아들고서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이 훨씬 더 많다. 교사가 논술문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한 내용을 모두 읽어보기도 전에 자신의 논술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회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 여러 면에서 미성숙한 존재인 학생들로서는 아무리 교사의 애정어린 지도가 담겨있다고 해도 잘못한 점에 대한 지적으로 가득한 논술 첨삭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첨삭은 교사와 학생 간의 글로 나누는 대화요 논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하여야 한다. 교사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에 그치는 첨삭은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해도 학생에겐 한 번 읽고 넣어두는 것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 논술문제에 대한 학생의 의견이 논술문이라면, 이 견해에 대한 교사의 의견과 생각의 제시가 첨삭인 셈이다. 그러면 학생은 교사의 의견을 읽어보고 다시 한번 논술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해서 논술문을 재작성하는 것이다. 교사가 답변한 내용에 대해 학생이 또다시 답을 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때 첨삭의 내용은 논술문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일러주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글은 국어정서법에 비추어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또 비문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첨삭의 내용이 맞춤법, 표준어의 사용, 띄어쓰기, 호응 관계 등으로 한정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첨삭의 궁극적 목적을 생각할 때 문장 표현의 영역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담은 글의 내용이다. 학생의 입장에서도 맞춤법이나 정서법에 집착하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지나치게 커지고 글쓰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 이는 학생의 논술 수준에 따라 적절히 비중을 주는 것이 좋다. 첨삭의 궁극적 대상은 학생의 생각이고, 글에 전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첨삭은 학생의 글을 대신 완성해 주는 것이 아니다.
첨삭을 하다보면 학생 글의 표현을 다듬거나 고치기를 권하는 수준을 넘어,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 완성해 주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서론부터 결론까지 학생의 글을 전부 부정하고 마치 새 글을 작성하듯 모두 고쳐주는 일도 있다. 나아가 이런 첨삭의 수고를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이렇게 학생의 글을 교사가 대신 완성해 준다면 학생의 역할을 없어진다. 첨삭을 통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좋은 글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학생이 해야 할 일이지 교사의 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글에 대해 더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잘 못 가고 있는 방향을 구분해서 일러주고 점검해주는 데에 머물러야지 절대 글을 대신 완성해 주어서는 안 된다.
때로 첨삭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막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논술 능력이 좋은 학생들에겐 교사의 첨삭이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교사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효과가 높다. 그러나 설명에 그쳐야 한다. 대신 써 주는 것이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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