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잡수던 밥을 드시던 숟갈로 듬뿍 떠 손주 밥그릇에 얹힌다. “많이 묵고(먹고) 후딱(빨리) 커라… 잉(엉)!” 손주는 할머니 침이 묻은 숟갈이 더럽게만 여겨져 찜찜하지만 내색을 못하고 꾸역꾸역 먹어댄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할머니로 생긴 걸로만 알았던 어린 손주가 철이 들면서 사람은 늙는단 것을 알았지만, 놀랍게도 할머니의 처녀시절을 실감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손주가 청년이 되어 어쩌다 빛바랜 사진에서 본 할머니의 처녀 적 모습은 자신이 사랑하는 처녀만큼 귀엽고 예뻤던 것이다.
그 손주도 이제 노인이 되어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늙는다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또 사람이 나이 먹어도 늙지 않으면 그도 자연스럽지 못하니 세월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의 아들되고 며느리되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젠 이 세상에 안계시고, 두 아들을 장가들여 손주 손녀들이 주렁주렁하여 내가 옛 할머니의 처지가 되다보니, 새삼 생각되는 것은 부모자식 간이다. 더러 자식들이 사소한 일에 노엽게 해도 나 역시 부모를 노엽게 한 적이 적잖으니 생각을 접어두곤 하는 것이다.
교장을 지낸 박종무 선생님이 한 노인시설에 붙여둔 작자 미상의 ‘허무’ 제하 ‘四四調(사사조)’ 노인 주제 인쇄본 글 내용이 세태의 단면을 풍자한다고 보아 이에 소개한다.
‘부생모유 그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큰데 / 청춘남녀 많다지만 효자효부 안보이네 / 시집가는 새색시는 시부모를 마다하고 / 장가가는 아들들은 살림나기 바쁘도다’
‘제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싫은 표정이네 / 시끄러운 아이소리 잘한다고 손뼉치며 / 부모님의 회심소리 듣기싫어 빈정대네’
‘제자식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므러나 / 부모님의 기침가래 불결하여 밥못먹네 / 과자봉지 들고와서 아이손에 쥐어주나 / 부모위해 고기한근 사올줄은 모르도다’
‘애완동물 병이나면 가축병원 달려가도 / 늙은부모 병이나면 그러려니 태연하고 / 열자식을 키운부모 하나같이 키웠건만 / 열자식은 한부모를 귀찮스레 여겨지네’
‘자식위해 쓰는돈은 아낌없이 쓰건만은 / 부모위해 쓰는 돈은 하나둘씩 따져보네 / 자식들의 손을잡고 외식함도 잦건만은 / 늙은부모 위해서는 외출한번 못하도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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