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이 발등을 찍혔다. (권력)정상의 하산길에서 그것도 믿었던 돌에 걸려 찍힌 것이다. 당선축하금이 포함된 삼성특검법을 차마 거부못한 전격적 수용의 배경 설명에서 그런게 묻어난다.
“국회에서 통과할 때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아 재의 요구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해 수용키로 했다”고 했다. (재적의원 189명의 82%가 넘는 155명의 찬성으로 통과돼 거부권을 행사해도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재의 통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삼성특검법은) 국회의원들의 횡포이자 지위 남용”이라며, “국회가 결탁해서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법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건 ‘국회가 결탁했다’는 대목이다. 우군으로 믿은 국회 제1당의 대통합민주신당에게 배신당한 불쾌감을 토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친노계열의 직계조차 강건너 불 보듯이 적극 저지에 나서지 않은 섭섭함은 충격일 수 있다.
청와대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레임덕은 없다는 권력 의지를 수차 비쳤다. (예컨대 기업도시 건설, 2단계 균형발전, 부처 기자실 폐쇄 등 말기적 증상의 대못질 발작에 바빴다) 이런 와중에 당선축하금이 포함된 삼성특검법 통과에 신당이 한나라당과 함께 손들고 나온것은 명백한 레임덕 현상으로 대통령의 입장에선 심히 뼈 아플 것이다.
그러잖아도 유쾌하지 못한 처지다. 후계 구도로 점찍은 적자 직계군은 후보 경선에서 지리멸렬하고, 후보가 된 서자 직계는 좀처럼 국민의 지지도가 뜨지 않는 판이다. 이런 게 다 자신의 실정 탓으로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그로썬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적 갈등을 더 증폭시킬 것이다.
대통령은 “(특검법이) 굉장히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몇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시점에선 논할 때가 아니다) 이보다 대통령의 불만이 의아스런 것은 당선축하금에 대한 개념이다. “대통령이 받아야 당선축하금 아니냐, 개념상 차이는 구분해 줘야 한다”고 했다. 측근이 받은 건 당선축하금이 아니라는 그의 개념 구분은 매우 무책임하다.
뭉칫돈을 노골적으로 “당선축하금입니다”하며 주는 포괄적 뇌물수수 방법은 거의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당선된 대통령) 측근에게 넌지시 건네는 포괄적 뇌물수수 방법은 흔하다. 그리고 당선 요건이 충족되어 건네진 뭉칫돈은 (묵시적) 당선축하금으로 위장된 뇌물인 것이다. (대통령 총무비서관 최도술이 2002년 12월 SK그룹으로부터 11억원 받은 것을 비롯, 생수동업자 안희정·후보시절 수행팀장 여택수 등 최측근들이 대선 이후 수수한 돈이 밝혀진 것만도 20억4천300만원이다. (“대선 이후 돈벼락이 떨어지니 참모들이 이성을 잃은듯 했다”는 것은 노무현 후보 공보특보였고, 지금은 민주당 대변인인 유종필이 한 유명한 말이다)
‘나는 안 받았으니까 깨끗하다’는 말은 좀 헷갈린다. 직접 받은 게 아니고 간접으로 받았으니까 안 받았다는 건지, 직·간접 다 한 푼도 안 받았다는 건지 궁금하다. 아무튼 대통령 노무현은 2008년 2월25일 퇴임 후엔 (자신이 공포한 특검법에 의해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 앞에 앉아 조사를 받는다. 대통령의 재임 중 형사면책은 특권이긴 해도 공소 시효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지되는 것이어서 정지가 해제되면 시효가 다시 시작된다)
대통령이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힌 청와대 춘추관에서(배석한 청와대 참모진을 돌아보고) “청와대 사람들은 전부 춥고 배고플 때 살던 사람들이라 인맥이 시원치 않다”며, (그래서) “삼성하고 인맥 팍팍 뚫어놓고 거래하며 편안하게 비서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측근 두둔은 국민이 보기엔 헛방이다.(되레 안 한 것보다 못하다)
측근을 두둔할 때마다 그들의 비리가 드러나 체면을 구겼으면서도, 두둔이 무작정 여전한 것은 임기말에 밀어닥친 외로움을 그래도 믿을 것은 청와대 식구 뿐이라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다. 예쁘면 다 좋게만 보는 심리학상의 후광효과에 빠진 것이다. 대통령의 실정을 심리적으로 분석한 게 있다. 미우면 다 밉게 보는 악마효과, 잘된 일은 다 제 탓으로 돌리는 내적귀인, 안 된 것은 다 남 탓으로 돌리는 외적귀인의 편향에서 헤어나지 못한데 기인된다는 것이다.
노무현만이 아니다. 지금 다음 대통령을 하겠노라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통령 후보군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되든 잘못된 전철을 또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마음이 홀가분한 사람은 권력의 책임을 무겁게 알았던 사람이다. 반대로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마음이 아쉬운 사람은 권력의 책임을 가볍게 안 사람이다. 전자는 영예롭고, 후자는 고독하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