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논술 3>

이 세 영 (수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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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교과서 내용’에 끊임없이 질문 던져야

논술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교사들이 논술을 특정 교사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많은 학생들이 논술이란 따로 시간을 내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대학의 입시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 수업만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능 시험이 끝난 이후로 전국 각지의 수많은 학생들이 서울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으로 몰려오는 사태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던 예전의 수능 만점자들의 말이 믿기 어렵듯이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논술 시험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교과서를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수준이라면 교과서만으로는 대학의 논술을 준비하기 어렵다. 복합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여러 개의 제시문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충분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논제가 요구하는 사항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맹목적인 지식 습득의 교육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 모두 교과서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교과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1차 텍스트일 뿐이다. 교사는 그것을 토대로 학생들의 심층적 사고력과 다각적 사고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이 먹기 좋게 요리해서 입에 쏙쏙 넣어줄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교과서의 내용에 의심을 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사고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학생들도 교과서에 밑줄 쫙 긋고 맹목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동시에 저자의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말고 책이나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다 심화된 내용을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

결국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통한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신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수업이 아닌 모든 수업시간에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논술 능력은 특정 교사의 특정 수업에서만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의 모든 수업에서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논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데, 논술이란 절대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교과서와 논술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학교는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하는 사설 입시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모든 수업 시간에 논술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논술이야말로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담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수업 시간은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학생들의 열정적인 필기로 이어져 왔다. 물론 강의식 수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아준다 해도 학생들은 결코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 역시 교과서를 토대로 하되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과서는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 활동에 짐이 될 수 있다. 교과서는 단지 하나의 책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경전(經典)처럼 모시면서 정답을 찾으려고만 애쓴다면 오히려 학생들의 사고력 증진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최소한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어’라고 말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교과서를 찢어버림으로써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다. 매우 감동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교과서를 찢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 교과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따지며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교사가 교과서를 토대로 끊임없이 아이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킨다면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교과서는 그 때 찢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 세 영 (수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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