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이면 개인 비누와 수건을 챙겨들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살다시피 하는 내성적이고 유난히 깔끔한 성격의 K양(18). “본래 예민한 성격”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모들도 딸아이가 힘들어하자 함께 정신과를 찾았다. 검진 결과 강박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진단됐다. K양은 수험생이란 부담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증상이 악화된 것이고 어머니 역시 강박적으로 청결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원치 않는 생각과 행동 반복 일상생활 장애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증상은 크게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으로 의식에 침투하는 고통스러운 생각, 충동 또는 심상 등을 말한다. 음란하거나 근친상간적인 생각, 공격적이거나 신성모독적인 생각, 오염에 대한 생각, 반복적 의심, 물건을 순서대로 정리하려는 충동 등이다. 이런 생각들이 부적절하다는 점은 알지만 잘 통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떠올라 고통스러워 하고 이러한 사고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흔히 강박행동으로 표출된다.
강박행동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으로 씻기, 청소하기, 정돈하기, 확인하기 등 외향적 행동이나 숫자 세기나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 등 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강박증상은 정상인에게서도 흔히 관찰되며 이러한 강박사고나 행동을 한 두 개 갖고 있다고 모두 강박장애는 아니다. 진단은 그 증상이나 행동이 환자의 건강한 생각, 사고,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기능 등을 얼마나 저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스트레스가 원인은 아니지만 증상악화 요인
강박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선천적, 환경적, 정신적 요인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관련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경해부학적으로 전두엽·미상핵 등 특정 부위에 뇌혈류가 증가되는 등의 이상들도 발견되고 있다. 강박장애 환자의 1차 가족 중 35%가 이 질환을 갖고 있다는 보고가 있어 유전적인 소인도 간과할 수 없다. 스트레스 자체가 강박증의 원인은 아니지만 스트레스 상황에서 강박 증상이 악화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아이의 출산, 또는 이혼 등의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 등은 강박증을 발병시키거나 기존의 강박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평생 유병률 2.5%로 드물지 않은 질환
예전에는 강박장애가 드문 질환으로 소개됐으나 최근 평생유병률 2.5%, 1년 유병률이 1.5~2% 등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연령별로는 흔히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 시작되지만 소아기에 시작되는 경우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발병 연령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빠르다. 남자는 6~15세 사이가 가장 많은 반면, 여자는 20~29세 흔히 발병한다. 강박장애의 증상을 앓았던 사람들의 75% 정도가 30세 이전에 증상이 발생한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불안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섭식장애, 뚜렛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으며 심하면 정신분열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알코올 및 약물을 남용하는 경우들도 있다.
◇강박장애에 대한 무지, 치료시 두려움이 증상 악화
강박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크고 생물학적 원인이 많아 스스로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평소 불안을 적절하게 해소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운동이나 취미생활 및 명상 등)을 갖고 있다면 강박적인 사고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강박장애 치료시 가장 큰 어려움은 질환을 숨기려는 경향이나 강박증에 대한 무지, 약물복용에 대한 두려움, 행동치료시 두려움에 맞서는 것을 회피하는 점 등이다. 중요한 건 강박장애가 뇌의 이상과 관련이 있는 뇌질환이라는 점. 이에 따라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등의 일반적 방법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치료받는 게 필수적이다.
◇약물치료·행동요법·정신치료 등 병행해야
강박장애 치료에는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수술요법 등이 있다. 정신치료는 치료자와의 면담을 통해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통, 방어기제 등을 살펴보고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약물치료. 80~90% 환자에서 정상적으로 사회·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호전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약물만으로 증상이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는만큼 약물치료와 더불어 행동치료를 같이 시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흔히 사용되는 행동요법들로는 불안감을 촉발시키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강박행동을 수행하려는 욕구에 저항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노출·반응차단 기법과 원하지 않는 생각들을 차단시키고 불안감을 줄이는 것을 돕는 사고차단요법 등이 있다.
이런 치료에도 호전이 없는 경우 뇌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강박장애와 관련된 부위의 신경다발을 절단하거나 강박사고나 행동의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을 자극하는 장치를 삽입하는 방법 등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후유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 질환의 진행이 5년 이상 지나고 다른 치료법이 효과가 없어 일상이나 사회활동을 심하게 제약받는 환자들에 한해 실시할 수 있다. <도움말 석정호 한림대의료원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과 교수> 도움말>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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