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위력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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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통장과 보통예금통장 등에 들어 있는 서민들의 ‘잔돈’ ‘쌈지돈’을 홀대하던 은행들이 이 돈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급여통장과 보통예금통장은 이자율이 낮아 은행권에선 ‘저원가성 예금’이라고 부른다. 저원가성 예금의 이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은행에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나는 저원가성 예금의 특성에서 나온다. 정기예금은 금리와 수익률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정기예금이 지금은 주식시장으로 많이 빠져 나갔지만, 증시가 침체하거나 은행이 금리를 많이 주면 은행으로 되돌아 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월급통장을 옮기려면 각종 공과금과 대출금 자동이체를 다시 해야하는 등 따라붙는 일들이 많아, 한번 빠져나간 월급통장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국민은행의 경우 저원가성 예금이 10월 말 현재 36조 1천822억원으로 지난해 10월 말에 견줘 2천500억원 정도 빠졌다. 지난해 연말 들어온 토지보상금 2조원 가량을 빼면 2조~3조원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저원가성 예금이 최근 수익성 악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은행에 든든한 기반이 돼 왔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올 1~10월 정기예금 이자는 평균 4.8%였지만 월급통장 이자는 0.14%에 그쳤다. 이렇게 모인 자금을 가지고 6% 정도의 이자를 받으면서 대출을 해 이윤을 남겼다. 저원가성 예금이 가져다주는 마진이 정기예금의 30배가 넘는 셈이다.

회사원들이 월급통장에 있던 돈을 모두 빼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옮기는 이유는 “은행이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회사원들의 월급통장이나 보통예금통장에서 인출돼 모인 증권사의 CMA 잔액이 지난달 23일 현재 26조원에 이른다. 1년 전인 지난해 11월 말의 8조원과 견줘 3배가 넘는다. 같은 기간 계좌 수도 145만개에서 455만개로 3배 이상 늘었다. 이런 현상은 돈이 예금상품에서 투자상품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 무브’(자금 대이동)에서 비롯됐지만 은행들의 ‘부자 마케팅’에 대한 반작용도 한 원인이다. ‘평범한 다수’가 ‘잘난 소수’보다 낫다는 이론이 성립된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은행은 ‘큰돈’ ‘몫돈’ 예치도 중요하지만 서민들의 ‘쌈짓돈’ ‘푼돈’도 소중히, 정중히 대접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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