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논술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爭 點 討 論

시사쟁점 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코너. 정보의 바다에서 알짜만을 건져 올렸죠. 어때요? 벌써 빠져들고 싶죠? 뭘 망설여요. 그럼 빠져봅시다!!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무고한 자신에게 내려진 독배를 마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이 말은, 법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금과옥조로 오랫동안 쓰여 왔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정말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어떤 나쁜 법이라도 지켜야만 한다는 준법정신이 뿌리박히게 되었죠.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법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악덕이나 부정의를 오직 법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모순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강제하는 모든 법규가 정당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마음으로부터 그에 복종할 테지만 현실에서는 부정의한 법에 의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려 법을 불신하거나 기만하는 마음이 생기지요. 하지만 아무리 나쁜 법이라 해도 법이란 지켜지는 것으로 그 존재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를 섣불리 어기는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악법에 대한 바람직한 시민의 자세란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해봅시다./정윤희 상임연구원

<생각열기>

이미 악법으로 판명이 나 폐지 예정인 법률이 있습니다. 곧 폐지될 것이긴 하지만 이 법률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요. 과연 이 법을 지켜야 할까요?

곧 폐지될 A법, 지켜야 할까?

법치국가 유레카국에는 다수의 국민들이 악법으로 생각하는 A법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90% 이상이 A법을 악법이라 생각하고 이를 폐지할 것을 국회에 권고해 결국 A법은 정해진 절차에 의해 폐지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폐지를 의결하고 이를 공포하는 데까지는 여러 단계의 절차가 필요해 1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절차에 따라서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유레카국의 국민들은 A법을 지켜야 할까요?

다음 중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그 근거를 써봅시다.

① 유레카국의 국민들은 A법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② 유레카국의 국민들은 A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법치 국가에서는 법에 의해 사회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불합리한 법은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악법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명제Ⅰ. 무엇이 악법인지 기준이 모호해 판단하기 어렵다!

Yes/(악법도 지켜야)

어떤 법이 악법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현실의 법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사례에 의해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것만을 법률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살인자에 대해 ‘죄질, 동기, 정황 등을 따져 얼마만큼의 형량을 내린다’는 식의 구체적이고 상식에 비추어 누구나 동의할 만한 내용을 법으로 제정한다. 이렇게 한 번 제정된 법은 예외 없이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적용됨으로써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편한 법이라고 해서 저마다 악법이라고 판단한다면 법에 대한 혼란만 초래될 것이다. 또한 특정 개인에게 악법으로 비춰지는 법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일 수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다양한 계층의 이익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선 실정법이 가장 공정한 정의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법이 악법인지 판단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법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No/(지킬 필요 없어)

악법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듯하지만 사회정의와 헌법이 보장한 권리에 의거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떤 법이 인간의 자연적인 기본권을 교묘하게 억압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악법이다. 사회의 다수가 찬동하느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정의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는 사실로 악법임을 규정할 수 있다. 특히 실정법에서 어떤 법조항이 악법인지 아닌지 규정하는 것은 모든 법의 상위법인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느냐 아니냐로 판단 가능하다. 이렇듯 사회정의에 어긋나거나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조항은 악법으로 규정할 근거가 충분하다. 또한 국가의 이익과 질서유지를 명분으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인권이나 자유를 침해하는 것 또한 악법이다. 특정한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얻을 수 있는 사회의 이익과 질서란 정의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특정 계층이나 개인에 유리한 법을 제정하여 법의 이름으로 많은 부정의를 저지른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명제Ⅱ. 제정 절차에 문제가 없다면 악법적 요소가 있더라도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

명제Ⅲ. 악법이라도 법적안정성을 위해 폐지되기 전까지는 지켜야 한다!

명제Ⅳ. 현대사회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저항권 행사는 인정될 수 없다!

<쟁점이 술 술~>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먼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고민입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악법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 배경과 법의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토론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아봅시다.

1. ‘악법’이란 무엇인가요?

‘악법’이란 말 자체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요. 법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인 만큼 악할 수도 없고 악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 사회와 오랜 역사 속에서 실제 악법이 존재해 왔어요. 누가 보아도 정의의 기준으로 정당성을 인정하기 힘든 법이나 권력자가 다수의 대중을 억압하는 데 사용한 법들이 실제로 있었죠. 이런 법들을 악법이라 불러왔어요. 하지만 악법을 법으로 인정해야 할지, 악법도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특히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정된 법일지라도 개인의 양심에 위배되고 약자에 피해를 줄 때 과연 이 법도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크게 엇갈리죠. 이는 법이 정의를 실현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지만 사회를 유지시키는 강제 규범적 역할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임의로 특정법을 악법이라 규정해서 법을 어긴다면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어떤 법을 악법으로 보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죠.

2. 그렇다면 악법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나요?

무엇을 악법으로 규정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특히 현대사회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악법을 규정하는 기준이 모호할 수 있죠. 하지만 개인의 기본권이나 자유를 침해한다든가, 특정집단에게만 유리하도록 법이 제정되었거나, 소수자를 차별하는 등 보편적인 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들은 대체로 악법이라 부르곤 해요. 즉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 이성을 통해 판단했을 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법칙을 위배하는 경우 악법이라 칭하는 것이죠. 이는 법보다 더 중요한 보편타당한 법칙, 즉 자연법의 존재를 믿는 입장에 따른 판단이에요. 반면 이러한 자연법은 관념에 불과하며 현실적인 법규로 존재하는 실정법만이 법이라는 견해도 있어요.

3. 자연법과 실정법이 무엇인지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법이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명문화되어 적용되고 있는 법률들이에요. ‘공문서를 위조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규처럼 특정 상황에 대한 명확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요. 이러한 법을 실정법(實定法)이라 해요. 실정법은 나라나 민족, 시대 등 해당 사회의 조건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요. 이에 반해 ‘살인해서는 안 된다’처럼 어떤 사회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자연스런 규범을 자연법(自然法)이라고 해요. 물론 자연법은 실재하는 법률은 아니에요. 자연법을 중시하고 실정법 역시 자연법에 근거해서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데 이 입장에 따르면 악법을 법으로 인정할 수 없어요. 인간의 권리는 자연이 부여한 것이며 법은 단지 이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반면 자연권이란 추상적인 개념일 뿐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은 실정법만이 영향력을 가지는 법으로 인정하죠. 이 입장은 절차에 문제가 없는 실정법은 비록 악법이더라도 법으로 인정하고 개정되기 전까지는 지켜야 한다고 말해요. 이처럼 자연법과 실정법을 둘러싼 상반된 입장은 현대사회의 법의 이념 중 정의와 법적안정성이라는 요소로 구현되어 있어요.

4. 법의 이념에서 법적안정성과 정의란 무엇인가요?

법의 이념이란 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이상을 말하는데 정의의 실현과 법적안정성이 중요한 요소예요. 현대 법치 국가에서 정의는 대체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며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해요. 법은 이러한 정의의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삼아야 하죠. 실제 정의개념은 실정법 중에서도 가장 상위법인 헌법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는 자연법을 구체화시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한편 법적안정성이란 사람들이 법을 믿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법에 대한 신뢰나 법 자체의 권위라 할 수 있어요. 법적안정성이 흔들리면 사람들이 법을 신뢰하지 않고 법률을 지키지 않아 사회혼란에 빠지게 되죠. 악법도 지켜야하는지의 물음은 법의 두 이념인 정의의 실현과 법적안정성이 충돌하는 상황이에요.

5. 악법을 거부할 권리는 없나요?

독재정권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에서도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악법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악법에 대해 저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악법이 폐지되도록 노력하죠. 이렇게 악법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저항권이라 불러요. 저항권은 법치 국가에서 자연법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의 공권력에 대하여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비상수단이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에요. 악법은 이미 하나의 악이며 더 이상 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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