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사극 ‘이산’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주인공 이산(훗날 정조)이 궁궐 밖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나, 궁녀 성송연을 도화서 다모로 그려낸 건 허구다. 사료를 근거로 할 때 혜경궁 홍씨가 정치적으로 마찰을 빚으면서도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의지가 강한 여인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SBS-TV의 ‘왕과 나’에서 예종은 내시들을 핍박하다가 독살된다. 당시 내시의 위상이 조정 대신과 왕족을 쥐락펴락하는 일이 불가능했는데도 왕을 죽이고 정치력을 행사하는 등 ‘권력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김처선이 ‘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6대 왕을 모셨다’는 역사적 기록은 뒤로 한 채 예종 때 입궐 해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이 왕위에 있을 때까지도 일개 내시에 머무르고 있는 건 그렇지 않다. KBS-TV ‘대왕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이 세종이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려다 ‘왕자의 가출 사건’까지 창조해냈다. 백성의 삶이 궁금한 충녕대군이 남몰래 궁을 빠져 나간 것도 모자라 납치까지 당한다. 제작진은 “고려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나는 장면은 충녕대군의 범상치 않음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하지만 억지스럽다. 앞으로 왕권을 놓고 펼쳐질 양녕대군의 치열한 암투도 자칫 세종대왕의 본 모습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저어스럽다.
조선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한 사극의 역사 왜곡은 더욱 심했다. MBC ‘태양사신기’는 환웅이 환생한 인물이 광개토대왕이라고 설정했다. MBC ‘주몽’은 고구려를 부각시키려는 의욕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부여를 작은 소국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주체로까지 묘사했다. 하지만 고구려가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하려 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요즘 사극들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야사를 정설인 것처럼 포장해 시청자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장면들이 다수 눈에 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면 더욱 엉뚱한 이야기가 나올 우려가 있다.
더구나 수출된 사극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중요한 수단이어서 그 파급 효과가 더욱 크다. 재미도 좋지만 사실(史實)을 지나치게 벗어나진 말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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