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을 보고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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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음악이 인기가 없다보니 전통의 음악제전인 그래미상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뚝 떨어졌다. 언론도 전에는 그래미상 시상식이 열리면 특집과 분석 기사로 지면을 크게 할애했지만 지금은 단순한 수상 보도로 끝내버린다. 올해 그래미상은 지난 1959년 시상을 시작한지 꼭 50년이 된 뜻 깊은 자리였다. 공정함과 객관성 등으로 권위를 쌓은 이 역사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끝없는 시비와 뒷말 등으로 지상파 방송사 연말시상식이 사라진 국내 가요계는 할 말이 없다.

올해 그래미상은 50년이라는 햇수보다 또 한차례 그래미상의 무게감을 확인해준 부러운 시상결과를 보여 줬다. 올 그래미상의 주연은 에이미 와인하우스라는 이름의 영국 여가수였다. 그는 그래미상의 핵으로 일컬어지는 네 부문 가운데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곡’ 그리고 ‘최우수신인’ 등 세 부문을 휩쓸고도 모자라 다른 두 부문의 트로피도 수상, 총 5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다관왕은 늘 있어왔다. 마이클 잭슨이나 산타나처럼 8관왕도 있었고 지난 2003년 시상식에서 노라 존스는 그래미의 핵 네 부문을 석권한 바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위업이 역사상 신기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상 결과가 놀라움을 주는 것은 먼저 그간 영국 가수들을 은연중 기피해온 그래미 주최측이 예상을 깨고 영국 여가수에게 상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행동거지가 방정하지 못해 단정한 사생활이나 인간승리 등에 초점을 두어온 보수적인 그래미상 시상관례에서 크게 벗어났다는데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공연 중 술에 취해 무대에서 쓰러진 적도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갱생센터에 보내져 현재 보호감찰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에 수상한 곡 ‘리햅(Rehab)’은 바로 자신이 알코올중독자라고 갱생센터(리햅)로 보내려는 주변의 명령에 가지 않는다고 버티는 실제 담을 노래로 옮긴 작품이다.

알코올 아닌 마약복용 전력도 있으며 공식석상에서 다른 아티스트를 비난하는 등 입도 거칠어 영국 타블로이드신문 뉴스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오른팔에는 긴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런 불량스런 태도와 이미지를 그래미가 좋아할 턱이 없다. 음악 관계자들은 그래미의 전례를 들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수상 가능성은 낮게 보았다.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언론은 이변, 파란, 반란 등의 표현들을 썼다.

그래미 주최측이 말썽꾸러기(?)에 트로피를 몰아준 이유는 단 하나, 음악의 예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현대적인 힙합 사운드에다 저 옛날 60년대의 낭만적 소울 사운드를 섞어 하나의 새로운 성공공식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아왔다. 인기로 따지면 비욘세, 퍼기, 그웬 스테파니 등 그보다 위인 가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미는 그러나 자기 음악세계를 가진 아티스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우린 과연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또한 그런 음악가를 대우해주는 음악계나 음악시장인지를 묻고 싶다. 스타만이 판치고 아티스트는 없는 한 음악계의 부활은 요원하다. 그래미상을 보면서 다시금 우리의 아티스트 부재를 절감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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