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부처 개편안, 영어교육 개선방안, 한반도 대운하 등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따지고 보면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때도 행정수도 이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끓었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서로 이해를 달리 하는 집단들의 목소리가 쟁쟁거리는 일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주로 젊은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는데 요즘은 남녀노소, 신분 여하에 관계없이 일반화된 것 같다. 모두들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겠지만 너무 자기 목소리 높이기에만 힘쓰는 나머지 다른 주장에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연거푸 친구들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제기한 영어교육 개선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무슨 거창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아닌 장삼이사들이 사석에서 나누는 잡담 수준의 대화였지만 대화를 마치고 헤어진 후 뭔가 곱씹어보게 하는 면은 있었다. 필자는 최근의 영어교육 관련 논쟁의 핵심을 알지 못하는 탓에 친구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한 친구는 인수위 안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였다. 그는 인수위 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파악하고 있는 듯 하였다. 하지만 인수위가 그런 정책을 추진하게 된 이유나 배경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잘 모르고 있었다. 다른 친구는 반대로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친구였다. 그 또한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의 문제점은 상당히 조리 있게 파악하는 듯 했지만 반대론자들의 주된 반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마음 없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외치는 모습들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공허한 것을.
꽤 오래 전 한 생태학자로부터 들었던 특강이 기억난다. 숲 속에 한 두 그루 섞여서 자라는 소나무에는 송충이가 없는 반면, 소나무들로만 이루어진 숲에는 송충이들이 번성한다고 했다. 다양한 종들이 어우러져 사는 본래의 자연은 생태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이지만, 인위적으로 자연의 다양성을 깨뜨려 소나무 숲을 꾸미게 되면 생태의 안정성이 손상된다고 했다. 따라서 생태계이든 인간 사회이든 다양성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생태학자는 강연의 마지막에 그러므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귀히 여기라고 강조하였다. 당시는 군사독재 시절이던 80년대였는데, 어릴 때부터 획일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교육 받아 왔던 필자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는 특강이었다. 그 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찰음들을 들을 때마다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주장하던 생태학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곤 한다.
새 정부의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다. 사람들은 뭔가 힘을 가지게 되면 듣고 배우려 하기보다 자기생각을 일방적으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옛 성현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겸손한 자라고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부디 새 정부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겸손히 배우려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생각에 파묻혀 지내지 말고 자신과 다른 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기회 되는대로 겸손히 그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분들이 되길 바란다. 지도자들이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겸손히 마음을 여는 면에서 본을 보이게 되면 우리 사회의 품격이 한결 높아지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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