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대비 지하벙커 박물관 변신>

(베를린=연합뉴스) 동서 냉전 당시 서독 정부가 핵전쟁에 대비해 구축해 놓았던 거대한 지하 벙커가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서독 정부의 수도였던 본에서 약 30㎞ 떨어진 아르 계곡에 위치한 핵전쟁 대비 벙커가 후세대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 박물관으로 개조돼 일반에 공개됐다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 인터넷판이 1일 전했다.

포도밭으로 덮여 있는 구릉지 19㎞ 지하에 자리 잡은 이 벙커는 200m 길이의 규모를 갖고 있다.

육중한 철제 문이 있는 벙커 내부의 한 방에는 방사능 오염 제거장치, 가스 마스크, 산소 탱크 등이 전시돼 냉전 당시 핵전쟁의 위협을 실감케 하고 있다.

서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한 해 전인 1960년 핵전쟁 대비 지하 벙커 구축 공사를 시작해 1972년 완공했다.

이 벙커는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3천명의 정부 관리가 30일간 이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벙커 공사에 직접 참여한 기술자인 파울 그로스는 벙커에 들어갈 인사로 대통령, 총리, 의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주요 정부기관 관리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지하 벙커는 완공된 이후 한 번도 실제 사용되지 않았으나 200명의 기술자와 관리인들이 준비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 벙커에는 침실 936개, 사무실 897개가 있으며 야전 병원도 5개나 설치됐다. 이 곳에는 심지어 미용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로스는 "이 곳은 핵 공격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자체 전력과 급수 시설을 갖추었으며 식량도 비축해 놓았다. 식량은 신선하게 유지됐으며 정기적으로 교체됐다"고 전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됐다. 독일 정부는 1991년 독일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동서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독일 정부는 1997년 이 벙커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이 곳을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은 없었다. 정부는 이 시설을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시설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방도가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이를 공공에 개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독일 연방 건설.도시계획청이 후 세대를 위해 이 시설의 일부를 보전하는 방안을 강력하게 제의함에 따라 독일 정부는 박물관 개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플로리안 마우스바흐 건설.도시계획청장은 이 벙커는 냉전의 의미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냉전으로 인한 핵전쟁의 위협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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