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배우 4명, 웃음·감동 쥐락펴락
‘한밤의 세레나데’(?). 촌스런 뮤지컬 이름에 극 배경도 70년대, DJ가 등장하고 포크송과 디스코라니 큰 기대 없이 객석 한 켠에 앉았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자주 본듯한 활달한 한 총각이 기타를 들고 나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공연이 진행될수록 점점 상상이 무너지더니 지난 7일 오후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을 나오면서는 흡족함을 감출 수 없게 됐다.
장소는 30년 전통 지선이네 순대국집 안에 설치된 70년대식 라디오부스. 시간은 새벽 2시. 컴컴한 무대에 마르고 촌스런 스타일의 서른세살 노처녀 DJ가 부스 안에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서른세살이란 나이도 “꽃 중의 꽃 사쿠라가 둘 삼땡~!”이란 노래로 희화하면서 신나게 기타치는 그가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듣는 기타소리가 정겹고 DJ의 노래는 폼잡는 노래보다 훨씬 실감이 나 관객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낸다. 컴컴하고 작은 소극장 분위기에 인위적인 부분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스토리 전개가 점점 자연스러운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해 억지 웃음이 없는 무대가 이어졌다.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 뮤지컬은 갑자기 지난 1973년 12월29일로 돌아간다. 디스코장 쎄씨봉, 25도 두꺼비 소주를 입구를 털어내고 따라마시는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이 연이어 터진다. 순대국집 할머니의 구수한 욕설이 줄줄 이어지고 귀여운 여배우들이 스토리를 따라 사람 사는 모습이 희노애락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작은 뮤지컬이지만, 등장 배우들은 하나같이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보니 배우라곤 DJ, 엄마 박정자, 아빠 박유성, 감초배우 이렇게 4명뿐이었는데 무대는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기분이다. 처녀 적 엄마부터 욕쟁이 할머니 엄마 박정자를 연기한 윤진성의 순간 변신도 멋졌고, 전체 스토리를 끌고가는 DJ 박지선 역을 맡은 김영옥의 노래실력과 끼도 돋보였다. 감초배우로 할머니, 야채장수, 이정한, 류경아, 실장 등 일인 다역을 소화해버린 배우 이상은도 잊지못할 공연을 선사해줬고 아빠 박봉팔과 도너츠 역을 소화한 배우 배윤범은 느끼함의 진수로 객석을 뒤집어놓았다. 배우 한명 한명의 내공들이 모여 규모는 작아도 공연의 감동은 예산을 잔뜩 들여 만든 왠만한 대형 공연 못지 않았다. 언제 옷을 갈아입었나 싶게 빠른 변신, 극 전개가 전혀 지루함이 없어 공연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까지 뮤지컬에 빠져들었다.
자연스런 대사와 배우 동선이 많이 다듬어진 듯 보였는데, DJ 멘트 중 “연말”이란 단어도 그렇고, 극 전반적인 분위기가 겨울이라 연말에 더 어울리는 공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음향은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연 중 손에 꼽을 만큼 훌륭한 소리전달로 객석 뒷자리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하지만 DJ박스 장면은 빔이 너무 약해 잘 안보여 조명조절이 다듬어진다면 완벽한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촌스러워, 촌스러워, 어떻게 저렇게 촌스러울 수 있나” 싶은데, 보면 볼수록 중독되는 촌스러움이 결국 마음 속에 따뜻함으로 남아버렸다. 올해 연말 가족들과 다시 한번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를 보러 가야할 것 같다.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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