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촘촘한 구성 돋보인 '내가 숨쉬는…'

(연합뉴스) 탤런트 김민 남편이라는 점으로 국내에 알려진 이지호 감독. 한국의 여러 감독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감독이 쟁쟁한 할리우드 톱스타들을 불러내 영화 '내가 숨쉬는 공기'를 내놓았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도 영화 타이틀에 선명히 'Jieho Lee'라는 한국식 이름을 박았고, 영화 도입부에 "한국은 내 심장이 속해 있는 곳"이라는 문구를 넣을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강하다는 걸 느끼게 한다.

'내가 숨쉬는 공기'는 희(喜)ㆍ노(怒)ㆍ애(愛)ㆍ락(樂)의 관점에서 네 가지 이야기로 펼쳐진다. '애'가 슬픔(哀)이 아닌 사랑(愛)이라는 점만 다를 뿐, 한국에 뿌리를 뒀다는 이 젊은 감독은 동양의 인생관인 '희로애락'을 장편 데뷔작에 실었다.

영화는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와 구성이 닮아 있다는 점에서 1월 개봉한 미국에서 창의력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각 편의 주제가 짧은 동안에도 선명히 부각되고 촘촘한 매듭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졌다는 점에서 이 감독을 주목하게 한다. 상업영화면서도 작품성을 놓지 않는 독립영화 같은 면모가 느껴지는 건 이 때문.

'크래쉬'에 출연했던 브렌든 프레이저가 비슷한 형식의 이 영화에 또 출연을 결심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을 터. 앤디 가르시아, 포레스트 휘태커, 케빈 베이컨, 세라 미셸 겔러, 줄리 델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던 미덕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네 편의 주제가 의미 있는 오브제를 통해 한데 이어지는 형식에 대한 '기시감'만 극복한다면 차분하게 사유하듯 철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를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카메라는 담백하고, 화면에는 여백의 미를 살필 수 있다. 인간의 관계는 미처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유기적이며 사랑이 절망을, 소망이 파국을, 체념이 희망을, 마침표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포레스트 휘태커 출연) = 자라는 내내 우등생이자 모범생이었던 펀드 매니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가는 소심한 이 남자는 우연히 승마 조작 경기에 관한 정보를 듣고 빚을 내 5만 달러의 거금을 투자한다. 그러나 예정된 승부가 어긋나며 이 남자의 인생도 어긋난다. 그는 악덕 사채업자 핑거스에게 쫓기게 되고, 어느 날 적은 돈으로 주식을 사서 늘 따는 고객이 건네주는 총을 받는다. 그 총으로 은행을 턴다.

◇기쁨(브렌든 프레이저) =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핑거스 휘하의 해결사. 앞을 본다 해도 결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감정마저 잃어간다. 핑거스가 협박 끝에 받아낸 것은 이제 막 가창력으로 부상한 한 여자 가수의 계약서. 그에게는 여가수를 감시하라는 임무가 맡겨진다. 그런데 여가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이 생기고, 핑거스의 조카에게 벌어질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이제야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가수와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며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게 생긴 자신을 느낀다.

◇슬픔(세라 미셸 겔러) = 자신의 눈앞에서 차에 치어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심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신인 가수. 매니저의 도박으로 조직폭력배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도망치다 만난 사람이 핑거스의 오른팔 부하. 그는 가수를 숨겨준다. 두 사람은 비슷한 유년 시절의 경험을 갖고 있어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듯 사랑에 빠진다. 불안함 속에도 행복에 겨운 나날들. 핑거스의 눈을 피해 멀리 떠나려던 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사랑(케빈 베이컨) =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보기만 하다 친구의 아내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던 외과 의사. 그녀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 24시간 내에 희귀한 혈액을 구하지 못하면 죽는 절체절명의 상황. TV에서 한 여가수가 자신의 혈액형이 희귀하다며 바로 그 혈액형을 말한다. 가수에게 접근하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병원으로 오는 순간 병원 옥상에서 떨어지려는 가수를 보고 급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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