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1965~)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과 대학원 법학과에서 공부했다.
1992년 울산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으나 다음해에 학부와 대학원 시절의 활동이 문제되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석방 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리즈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고 지금은 서울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형사법의 성편향>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형사법의>
등이 있다.
//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비전향 사상범들의 경우 재범의 위험이 있으므로 준법서약서를 쓰게 하고 보안관찰처분을 통해 정부가 늘 그들의 행동을 점검해야 한다.
//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 빨치산들의 활동과 삶을 그린 <태백산맥> 은 이적표현물이며 이를 쓴 조정래는 빨갱이 작가다. 태백산맥>
// 가옥을 철거하려는 철거반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말한 경우, 경찰관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우리나라 법이 빨갱이 법보다 못하다”고 발언한 경우, “내일 판문점에 가는데, 그곳에 가서 북으로 넘어가버리겠다”는 객기 어린 농담을 한 경우 체포·구속되어 재판받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주장들은 모두 타당한 걸까? 아마도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들 네 가지 주장은 얼핏 각각 다른 사안에 대한 판단으로 보이지만 사실 모두 같은 문제에서 비롯됐다. 과연 이 네 가지 주장의 공통된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는 이러한 네 가지 주장들이 과연 타당한지 점검한다. 다시 말해 책은 좌파 사상범에 대한 사상전향제 및 보안관찰처분, 양심적 병역거부권, 빨갱이 콤플렉스와 사상의 표현 및 실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간다. 양심과>
앞서 살펴본 네 가지 주장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각각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 번째 주장은 비전향 사상범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우리 정부는 사상을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을 구금시켰다. 이는 일제 때 독립군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사상전향제를 따른 것이다. 사상전향제 아래에서는 사상범으로 붙잡힌 좌익수들이 사상전향서를 제출해 사상전향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선고된 형기를 마치고 나서도 감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설령 출소 기회를 얻었다 하더라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그들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일체의 집총병역을 받지 말라는 종교적 교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적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병역의무가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우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취업을 비롯한 사회에서의 여러 활동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신세를 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조정래가 빨갱이 작가라니 눈이 휘둥그레질 독자도 있겠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 번째 주장과 같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반공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은 용납될 수 없었다. 특히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반공사상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유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가리지 않고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가혹한 형벌에 처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빨치산들의 이야기를 담은 <태백산맥> 의 작가 조정래는 빨갱이기에 충분했다. 태백산맥>
네 번째의 경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제기되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가까운 과거에서 그 같은 주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히 타당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북한과 관련한 발언을 한 사람들은 재판을 받았고 그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예전처럼 심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과 관련한 발언이나 행동 등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장의 경우 국가보안법과 연관되어 있음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온 국가보안법은 최근 들어 개정 및 폐지 논란에 오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를 보장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사수하는 역할을 했지만 정작 국민 개인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국가보안법 아래에서는 오로지 국가의 안전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유지만이 중요했다. 이를 방해하는 개인의 사상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는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국가보안법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누리려는 자는 가차 없이 처벌되었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는 빨갱이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장의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는 좌파 사상범에 대한 사상전향제 및 보안관찰처분, 양심적 병역거부권, 빨갱이 콤플렉스와 사상의 표현 및 실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등이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을 공통된 문제점으로 꼽는다. 양심과>
양심과 사상의 자유란?
그렇다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선언한다. 현재 법 해석으로 헌법 제19조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모두 보장하는 조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정신적 기본권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이며 “최상급 기본권”으로 꼽고 이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그 어떤 권리보다 우위에 선 권리이다.
대한민국도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왜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된 사례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는 여러 이유들을 들고 있지만 여기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자. 양심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병역법 제88조의 입영기피죄로,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면 군형법 제44조의 항명죄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이를 근거로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뿐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고 종교는 갖고 있지 않지만 전쟁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무조건 병역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현역입영 대신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양심의 자유는 단지 국가에 대하여 가능하면 개인의 양심을 고려하고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일 뿐, 양심상의 이유로 법적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거나 법적 의무를 대신하는 대체 의무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병역기피 요인이 제거되어야 하며 대체복무에 대한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판결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그 어떤 자유보다 가장 근본적인 자유로 꼽는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 과연 부합하는 것일까? 물론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늘 다수의 의견만이 존중받을 수 있는 걸까?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핵심은 아닐까? 무엇보다 양심의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지을 수 없는 사안이지 않은가.
혹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행사하려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두고 이단의 양심은 보장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집총을 거부하고 병역을 기피하는 이유는 국가와 정부를 사탄의 조직으로 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처럼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며 국가와 정부를 사탄의 조직으로 보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양심은 무시되어도 될까? “최상급 기본권”인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곧 이단의 양심도 양심이며 이단의 인권도 인권인 셈이다. 만일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면 그 누구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도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홈스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해줄 때 나의 자유도 지켜진다는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넘쳐나는 사회를 꿈꾸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권리다. 하지만 과거 우리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면 기본적인 양심과 사상의 자유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의 저자인 조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양심과>
저자 조국의 제안을 음미하며 우리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킬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김경미 유레카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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