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여고생을 만났더니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또래가 스타가 되니까 좋긴 한데, 음반을 사는 쪽으로 마음은 가지 않아요.” 그래도 음반을 구입해 소장하려면 가수가 제 또래보다 나이가 좀 많은, 이를테면 조금 숙성해서 위로 바라보는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은 가수와 소비층의 연령대가 엇비슷한 게 사실이다. 대중가요를 소비하는 주체도 10대들이고, 실제 그들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 가수도 틴에이저들인 경우가 많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윗세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들보다 나이가 형뻘인 가수들을 좋아하고 음반을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1980년대 초반 여고생들이 “조용필 오빠!”를 연호하며 ‘오빠부대’란 신조어를 낳았을 때 1950년생 조용필은 서른이 넘어 있었다. 1984년경 여대생들한테도 인기를 누렸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발표할 시점에 심수봉 나이 또한 30대였다.
당시 팝에 열광했던 10~20대들도 그들보다 족히 열살 차이는 나는 선배 격 뮤지션의 음반을 사서 들었다. 1950년대 중후반생들이 열광했던 팝스타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은 각각 1947년과 1949년생이다. 최고의 록 밴드였던 레드 제플린 멤버들도 대부분 1940년대 중후반생들이다. 그때는 나이가 위인 대중스타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했던 것 같다. 자신보다 위 또래라야 경험폭도 넓고 더 오랜 기간 공력도 축적됐을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이 선망했던 것은 빼어났든 감각적이었던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그들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열광했던 것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그럼 같은 또래의 음악을 듣는 요즘 세대는 뭔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또래가수들에게 감정이입하고 주목하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 ‘그들의 인기’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나 “나도 얘 네들처럼 뜨고 싶다!” 등과 같은 느낌이랄까. 음악은 조금은 뒷전이다. “나도 저 가수처럼 음악을 잘해 가수가 돼야지!”하는 생각보다 음악은 작곡가든 제작자든 만들어줄 테고, 예쁘고 춤 잘 추기만 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먼저인 듯 보인다.
한류를 이끄는 한 유명 제작자는 “나는 음악이 아니라 스타에 투자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하긴 이 시대는 가수의 외모, 헤어스타일, 의상, 춤, 홍보와 마케팅, 인터뷰 등이 총체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한다. 또한 10대들이 “나도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세대의 능동성과 관련해 바람직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수의 기본인 음악을 놓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래의 인기와 스타지향성으로 인해 음악의 감동은 내팽개쳐진 채 기획사의 상품만이 판치는 흐름은 파국을 예약하는 것이다.
최근 수요층보다 나이가 훨씬 위인 일련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유희열, 김동률, 정재형, 김광진 등의 앨범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음악에 승부를 거는 이들의 부상은 한줄기 희망의 빛을 제공하지만 여전히 대세는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이다. 우리의 음악계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행여 인기가수와 팬들의 나이가 또래라는 점도 하나의 원인은 아닐까.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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